인도 힌두교의 선교 전략적 방안 연구 :
바울의 아테네 설교를 비교연구
지도 교수 : 안 점 식 교 수 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THM 설교학 유 성 두
목 차
Ⅰ. 인도 힌두교 이해
1. 힌두교란 무엇인가
2. 힌두교의 발전 역사
3. 힌두교의 경전
4. 힌두교의 철학적 토대
Ⅱ. 바울의 선교 설교
1. 바울의 선교 신학
2. 바울의 선교 전략
3. 바울의 설교 신학
Ⅲ. 바울의 아테네 설교
Ⅳ. 바울의 인도 힌두교에 대한 선교전략 전망
1. 선교적으로 접근 전망
2. 설교학적으로 접근 전망(아테네 설교를 중심으로 적용)
Ⅴ. 결론
Ⅵ.참고문헌
Ⅰ. 인도 힌두교 이해
1. 힌두교란 무엇인가
힌두교는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종교이다. 힌두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처럼 창시자에 의하여 시작된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힌두교는 엄격한 교리적인 종교도 아니다. 힌두교는 범신론적 세계관 속에 여러 종교들이 녹아든 것이다. 그래서 힌두교는 절충 주의적 혼합주의라고 한다. 새로운 사상과 종교를 아무런 불협화음없이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힌두교는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인격적 절대자를 신뢰하는 믿음의 종교가 아니며, 자신이 신이 되고자하는 종교이다. 또한 힌두교는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과 변화를 해왔으며 많은 종파들이 생겼으므로 하나로 이해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힌두교의 특징 중 하나는 특정한 창시자가 없다는 것이다. 거의 5천년의 시기에 걸쳐 인도의 모든 종교적 문화적 운동을 흡수, 동화하며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다.
힌두교는 수많은 경전을 가지고 있고 3억이 넘는 신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힌두교를 하나로 요약 설명하기는 힘들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힌두교에 대한 인식은 요가와 명상에 대한 것들과 소를 숭배하는 종교라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상 힌두교의 모습을 살펴본다면, 이와 같은 인식들이 지극히 단편적이고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인식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적인 관점으로 힌두교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힌두'(Hindu)라는 산스크리스트어는 지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인더스 강에서 물을 공급받는 지역인 ‘신두’(Shindu)라는 지명의 호칭이 와전되어 생긴 것이다. 힌두는 인더스강 지역의 사람들 혹은 그들의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대로, 힌두교의 복잡성 때문에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 그래서 힌두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 또한 다양하다. 예를 들어 막스 뮬러는 힌두교를 하나의 신에서 다신론으로 발전한 단일신론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다른 학자들은 다신론, 범신론, 무신론, 유신론, 심지어 기독교 학자들은 다귀론으로 정의한다.
노스는 다음과 같이 더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힌두교도들은 범신론자들이기도 하고 다신론자들이기도 하며, 다른 측면에서 보면 유일신론자들이기도 하면서 심지어는 무신론자나 혹은 불가지론자들이라고까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힌두교는 모든 종파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름대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즉, 브라만, 운명에의 복종, 카스트 제도, 윤회, 니르바나(열반), 요가, 다르마(법)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힌두교인들은 자신의 종교를 “사다나”로 이해한다. 이는 ‘목표에 이르다, 목표를 달성하다’를 뜻하는 어근 ‘사다’에서 나온 말로 목표와 목표에 이르는 수단, 그리고 진리와 진리에 이르는 길 모두를 의미한다. 즉 ‘사다나’는 삶의 최고의 목표에 이르는 길을 말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길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란 윤회에서의 해탈을 의미한다. 인도인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재상황과 세계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고통인 삶이 되풀이되어 윤회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윤회의 원인은 인간의 무지와 욕망 또는 집착 등으로 인하여 일어난 행위, 즉 업(業, Karma)때문이고 생각하고 있다.
힌두교있어서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제반 현상들, 소에 대한 숭배, 여러 신에 대한 제의, 요가 수행, 고도의 사상체계 등등은 모두 인간의 궁극적인 추구점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일치하고 통일하고 있다. 이를 통해 힌두교의 핵심은 인간의 존재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들의 해결에 있지, 그 해결방법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러한 힌두교의 특성이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의 수용과 그 공존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힌두교에 의하면 모든 특정한 종교적 진리들은 하나의 진리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 이것은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서 크리슈나(Krishna)의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내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나는 그들을 모두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모든 방면에서 그들이 택한 길은 다 나의 길이기 때문이다” 즉 힌두교는 여러 종교들을 관통하고 있는 동질적인 요소를 중요시하고 흡수하는 종교다.
2. 힌두교의 발전 역사
힌두교의 기원은 불분명하며 그 발전과정도 매우 복잡하다. 힌두교는 원래 인도 토착민의 종교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힌두교는 B.C. 1500년경에 인도-유럽 인종인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시작되었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사실은 힌두교의 뿌리는 그보다 더 이전인 B.C. 3000년경의 초기 인더스 문명에까지 소급된다.
1) 베다의 시대(B.C. 2000 - 600)
베다(Veda)는 가장 오래된 힌두교 경전으로서 힌두교의 초기 형태를 보여 준다. 인도에 침입한 아리안족은 자연의 힘을 신격화시킨 수많은 신들을 가지고 우선 펀잡지방에 들어와 베다 문화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서서히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B.C. 1000년경에는 아리안족인 종교 이념과 관습들이 피정복 토착민들의 것들과 혼합되었고, 발전하는 사회구조를 반영하게 되었다.
베다의 많은 신들은 하늘의 신, 대기의 신, 땅의 신으로 세부류로 나눠질 수 있다. 이러한 신들은 성직자, 무사, 농부 등 세 종류의 사회계급과 유사하며, 여기에 주로 검은 피부의 드라비다족 등 아리안족 이전의 인종들로 구성된 네 번째 계급인 하인과 노예가 첨가됨으로써 사성제도(Caste)가 확립되었다.
베다의 신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신들이 주요 신들이다. 창조의 신이며 도덕적 우주의 지배자인 바루나, 무사이자 왕의 성격이 강조되는 폭풍의 신 인드라, 성직자로서 신과 인간 사이를 조정하는 불의 신 아그니, 만물과 영혼의 신비적 결합을 가리키고 희생제물에 필수적인 성스러운 즙의 신 소마, 소마는 창조의 능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파괴와 치료의 신 루드라 등이다. 특히 루드라는 후에 파수파티 즉 “소의 왕” 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그리고 고전적 힌두교를 대표하는 시바의 출현을 예표한다. 또한 우주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후기 힌두교를 대표하는 신인 비슈누도 있다. 비슈누는 리그 베다에 나오는 작은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리안족과 비아리안족의 종교가 점차 통합되면서 베다 종교는 의식적인 것과 철학적인 것, 이 두 방향으로 발달하였다. 베다신의 숭배가 정교한 희생제사의식으로 발전되면서 학자이자 직업적인 성직자 계급인 브라만의 영향력이 커졌다. 희생제사 의식 같은 외적인 형식이 강조되면서 초기 다신교의 단순성은 사라져 갔다.
한편 베다 시기에 철학적으로 발전한 것은 부분적으로 의식과 희생제사에 집착하는 것에 대한 반동이었다. 많은 은둔자들은 숲 속에 모여 희생제물의 내적인 의미와 상징적 의미를 추구했으며, 리그 베다 시대 말기에는 우주를 하나로 통합하는 원리를 발견하려고 애썼다. 다양한 신들은 거의 한 존재에 대한 여러 이름들과 다를 바 없었다. 신들의 기능이 인격적 존재보다 더 중요시 되어, 창조의 기능은 만물을 지은 신인 비스바카르만(Visvakarman)이나, 피조물의 신인 프라자파티(Prajapati), 또는 브라만들의 신인 브라마나스파티(Bramanaspati)에게 있다고 했다. 이러한 철학사상은 주로 우파니샤드(Upanishads)의 가르침이며, 베다가 범신론 또는 다신론인 것에 비해 우파니샤드에는 범신론적 일원론이 나타나 있다.
이 시기의 또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발전은 우주적인 자연 질서와 도덕질서라는 개념의 출현으로, 이것은 후에 다르마(Dharma, 법과 의무)와 카르마(業, Karma) 법칙 같은 힌두교의 특징적인 개념으로 발전해 나갔다.
우주의 통일성과 근거에 대한 우파니샤드의 중심적 가르침은 우주(Brahman)의 근거와 인간 영혼(Atman)의 근본적 본질이 동일하다는 인식이다. 사람에게 있는 브라만은 신에게 있는 브라만과 같다. 이것이 찬도기아 우파니샤드(Chandogya Upanishads)에 아오는 “타트 트밤 아시(Tat tvam asi, 그것은 당신이다)”이다. 따라서 지나나(jnana, 지식)는 신에게 가는 길로서 야지나(yagina, 희생제사)를 대신하게 되었고, 카르마도 의식 보다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삼사라(Samsara, 윤회)는 거기서 나온 당연한 결과로 발전되었다. 비(非)베다적인 개념인 단념과 금욕주의는 모크샤(Mok놈, 구원), 우파사나(Upasana, 명상), 아힘사(Ahimsa, 비폭력) 같은 고전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길을 터놓았다.
2) 반동과 부흥의 시대(BC.600 - AD.300)
BC. 6세기가 되자 브라만 계급 중심의 종교와 지적인 사색에 대한 거센 반동으로 불교와 자이나교가 일어났다. 이 무신론적 두 운동은 브라만교의 윤리 사상을 인정하지만,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고 성직자 중심의 종교, 희생제물 제사를 거부하는 개혁세력이었다. 자이나교는 카스트 제도를 거부하고 금욕주의자들의 엄격한 금욕생활로도 유명하다. 이 때에 힌두교는 불교와 자이나교의 발흥과 마우리아 왕조(BC.322-185)의 억압으로 한때 쇠퇴했었다.
이 반동의 시기는 또한 힌두교의 부흥으로 특징지워 진다. 마우리아 왕조 몰락 후 힌두교는 두 개의 위대한 힌두교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와 마하바라타(Mahabharata)가 기록된 서사시 시대로 이어졌다. 이런 힌두교의 부흥은 증가하는 불교에 대한 반작용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 기존의 율법을 성문화 하려는 시도가 있게 된다.
이 시대는 아리안 문화와 비(非)아리안 문화의 계속적인 통합이 있었고, 비(非)베다적 문화에서 기원한 브라마(Brahma, 창조의 신), 비슈누(Vishnu, 보존의 신), 시바(Siva, 파괴의 신), 이 3대 신들에 대한 유신론적 운동들이 일어나 힌두교가 크게 부흥되었다. 이 3대 신은 트리무르티(Trimurti), 즉 절대자의 세가지 역할을 구성하고 있으며 힌두교의 3위 1체라고 할 수 있다.
(1) 시반신에 대한 숭배인 사비이즘(Saivism)은 비베다적인 신에 대한 숭배와 베다신 루드라(Rudra)에 대한 숭배가 혼합된 것이다. 시바는 요게스바라(요가의 신) 또는 나타라자(창조와 파괴라는 우주적 무희의 신)로 알려져 있다. 시바는 모든 상반되는 것들, 즉 창조와 파괴, 선과 악, 남과여, 정지와 활동 등의 화합이다.
인기있는 시바상은 그가 불의 힘을 가지고 네 팔로 춤추고 있는 모습이다. 힌두교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시바가 갠지스강을 있게 하였다고 한다. 그는 아무 화신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몇몇 여신들이 그의 배우자로 그와 결합되어 있었다. 이 여신들은 남신 시바를 도와주는 삭티(Sakti)이며, 여성의 능력과 비옥함을 대표한다. 특히 위대한 여신이며 시바의 배우자인 칼리(Kali)는 잔인한 능력을 대표하는 매우 두려운 존재이며, 이 신을 예배할 때 성적 문란이 행해진다.
(2) 비슈누신은 서로 다른 몇 개의 신성을 동화시켜 그의 한 몸에 지닌 것처럼 보인다. 비슈누의 화신으로는 라마와 크리슈나 등 10명 정도가 있는데, 이 의미는 비슈누신이 10여 차례 현현했음을 뜻한다. 특히 크리슈나는 인도의 신들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의 하나가 되었다.
(3) 한편 브라마에 대한 숭배는 인기를 끌지 못했으며 그에게 바쳐진 사원도 거의 없었다. 유신론적 숭배가 발전함에 따라 사원의 수와 우상 숭배, 행렬 기도, 성지 순례 등이 급격히 증가되었다.
이 시대에 발전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아바타라(avatara, 강림) 또는 화신의 개념이다. 이것은 신의 초월이 즉각 이뤄지기를 바라는 강한 유신론을 반영한다. 이 개념은 베다에는 없으며,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같은 대 서사시의 중심개념이다. 일시적으로 인간 모양으로 나타나는 신으로서 가장 인기있는 바슈누의 두 아바타라인 라마와 크리슈나는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이 힌두교 부흥시대에 가장 인기있고 가장 위대한 저술은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이다. 바가바드기타는 절대자인 브라만의 우파니샤드 교리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에 대한 신앙 등 당대까지의 위대한 여러 학파들의 가르침과 힌두교가 정신과 도덕에 관해서 쌓아온 지혜를 종합, 재해석하고 실제 생활에 적용시킨 것이다. 그것은 요가라는 전통 개념을 정신생활 전반으로 확대시키고, 야지나(Yajna, 희생제사)를 의식적인 것보다는 윤리적인 것으로, 카르마를 이기심 없는 행동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전통 힌두교를 새롭게 강조하였다. 이로써 전영역에 걸쳐 개인적, 사회적 윤리 문제가 다뤄지게 되었고, 지나나(지식), 박티(헌신), 카르마(행동)를 통한 균형있는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모든 학파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처럼 이 반동과 부흥의 시대 동안 정통 힌두교의 거의 모든 개념들과 관습들이 발달되었다. 그리고 여러 스승들이 이러한 많은 개념들을 체계화, 합리화시킴에 따라 철학적 체계가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다. 스승들은 자신들이 속한 학파의 문헌들을 정리하여 짧은 경구인 수트라(Sutra)를 만들어 냈다. 힌두교의 6대 철학 체계가 이 시기에 완전히 발달되었다.
3) 푸라나(Purana) 시대(AD. 300 - 1750)
서사시대의 힌두교의 부흥은 푸라나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이 시대에는 특히 신화, 이야기, 푸라나의 전설, 힌두 철학의 철학적 수트라 등을 통하여 힌두교가 대중화되었다. 인도에서는 이 시대에 불교가 서서히 사라져서 힌두교에 흡수되었고 자이나교도 쇠퇴하였다. 푸라나는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이는 그 시대에 종파 분리적인 경향이 커가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푸라나 시대는 박티(Bakti, 헌신)운동이 융성했던 시기로, 이 운동은 주로 시바신과 그의 삭티, 그리고 비슈누와 그의 배우자인 번영과 행운의 여신 라크슈미(Lakshmi)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8세기 경에는 남부 인도에서 신을 직접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인 알바르(Alvar)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비슈누에게 헌신된 방랑가수들로 카스트 제도, 계급, 성(性) 등을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왕, 거지, 여성, 다른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타밀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시를 노래 부름으로써 자이나교도와 불교도들을 인도로부터 몰아냈다고 하는데, 그들의 시는 헌신과 복종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4) 중세 시대(AD. 1200 - 1750)
중세 시대의 주요 특징은 인도 전역에 걸친 박티 운동이 확신된 것이다. 그 결과로 각 지방어로 된 신앙 문헌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 바가바타 푸라나는 박티 숭배의 주요 교리서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인도의 대중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사랑과 은혜의 최상의 신으로서의 비슈누의 영광을 위해 바쳐졌으며, 박티의 방법을 지나나와 카르마의 방법 보다 높은 위치에 둔다. 중세 시대의 박티 운동은 주로 비슈누, 크리슈나, 라마와 그들의 배우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그 절정을 이루었다.
이 시대 동안 북부 인도에서 박티 운동은 라마의 숭배를 중심한 것과 크리슈나 숭배를 중심으로 한 것, 이 두 방향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1) 라마 숭배를 중심으로 한 박티 운동은 14세기 말 라마난다(Ramananda)가 시작하였다. 그는 카스트와 완전히 결별하고, 라마(Rama)는 최고의 신이며, 구원은 라마에게 헌신하고 그의 신의 경건한 이름을 계속해서 부를 때 이루어진다고 북 인도말로 가르치고 다녔다. 모슬림 직조공이었다가 그의 제자가 된 카비르(Kabir)는 이슬람교의 수비파(범신론적 신비주의자) 전통과 힌두교의 박티 전통을 결합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는 아바타라의 원칙을 거부하고 신상숭배와 의식주의를 비난하였다.
카비르와 동시대인인 나나크(Nanak, 1469-1538)는 시크교를 창시하고, 그 또한 이슬람교와 힌두교를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시크라고 불리는 제자들을 조직하고 자신이 첫 구루, 즉 교사가 되었다. 그는 무형의 신과의 신비적인 결합으로서 구원은 무엇보다도 박티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신의 이름과 구루는 중재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크교는 힌두교로부터 분리된 유일한 박티 종파가 되었다.
카비르와 나나크가 화신에 대한 믿음이 없이 라마를 숭배한 반면, 툴시 다스(Tulsi Das, 1532-1623)는 북인도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바타라(화신)로서의 라마에게 열정적인 헌신을 다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라마야나를 북 인도말로 번역하였으며, 인격신에 대한 박티적 헌신, 신의 이름에 대한 경외, 구루의 존엄성을 강조하였다.
(2) 크리슈나 숭배를 중심으로한 박티 운동은 소치는 소녀인 라다(Radha)에 대한 크리슈나의 열렬한 헌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숭배는 님바르카(Nimbarka)가 시작하여 발라바(Vallabha, 1479-1531)에 의해 발전되었다. 벵골 지역에서는 차이타니아(Chaitanya, 1485-1533)가 크리슈나 숭배를 강력한 종교 운동으로 변화시켰는데, 그는 키르탄(Kirtan), 즉 영교의 노래를 부르면서 크리슈나에게 보인 강렬한 감정적 헌신은 헤리 크리슈나(Hare Krishna) 숭배 사상에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5) 현 대 (AD. 1750 - 현재)
모슬림의 인도 지배는 힌두교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그 후 18세기 중엽 영국의 인도 통치 시기에 서구의 세속적인 문화와 기독교의 전파는 교육을 받은 소수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쳐 수많은 영향력있는 개종자들과 힌두교 내에서 자기 개혁운동의 시작을 낳았다.
그리고 죤스(W. Jones), 월킨스(C. Wilkins), 막스 뮬러(Max Muller)등 많은 서구의 동양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로부터 힌두교 경전을 번역하여 신흥 지식계급들에게 힌두교 지혜의 보고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힌두교를 잠에서 깨어나게 한 또다른 요인이다.
현대 힌두교의 르네상스 혹은 개혁운동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브라모 사마즈(The Brahmo Samaj)는 1830년에 라자 라모한 로이(1772-1833)가 주로 서구의 기독교와 세속주의로부터 영감을 얻어 세운 현대 힌두교의 최초 개혁운동이다. 현대 인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그는 사티(Sati or Suti), 즉 과부를 태워 죽이는 악습을 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교종교학의 개척자였으며, 복음서의 윤리적 교훈, 특히 산상수훈에 영향을 받아 사회 윤리 의식을 발현하였고, 도덕성과 합리성에 기초를 둔 보편적인 종교를 강조하였다.
그의 후계자 더벤드라나드 타고르(1817-1905)는 힌두 경전의 가르침은 오직 그것이 이성 및 내적인 빛과 조화를 이룰 때에 한해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도입함으로써, 현대 힌두교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힌두교 자유파의 시작을 알렸다.
또한 후기의 지도자인 케샤브 챤드라 센(1836-1884)은 정서적 주관주의를 이 운동에 도입하였다. 그도 보편종교를 추구하여 기독교의 교리와 윤리를 삶에 대한 힌두교의 종교철학으로 흡수하고자 했으며, 자신의 운동을 구약과 신약 율법들을 완성시키는 신율법의 교회라고 표현했다. 원래 뱅골인들의 운동이었던 브라모 사마즈는 쇠퇴했으나, 모든 이상을 혼합함으로써 기독교에로의 개종을 방지해 왔다.
(2) 아라아 사마즈(The Arya Samaj)는 1875년 봄베이에서, 2년 후에는 라호르에서 스와미 다야난다 사라스와티(1824-1883)가 당시 자유화의 영향력에 대한 보수적 반작용으로 세운 것이다. 그는 우상 숭배, 카스트 제도, 화신, 순례, 유아 결혼 등을 공격하였다. 그는 신분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일신론적 형태의 힌두교 보편주의를 주창했다. 그러므로 점점 아리아 사마즈는 편협하고 호전적인 반외국인 운동이 되었다. 특별한 의식에서 불가촉천민들에게 신성한 실을 걸치게 하여 그들을 카스트 계급 안의 힌두교인들과 동등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모슬림이나 기독교인들을 힌두교로 재개종시키게 만들었다. 북부 인도에서는 이 운동이 기독교 교회의 성장을 성공적으로 저지시켰다.
(3) 라마크리슈나 선교회는 스리 라마크리슈나 파라마함사가 여러 시대를 통틀어 힌두 정신을 종합한 가장 뛰어난 본보기로 만든 것이다. 그는 체계적인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평생을 어머니 여신 칼리에게 헌신하며 칼리 성전의 설교자로 보냈다. 그리고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라마크리슈나를 계승하여 라마크리슈나 선교히를 설립한 사람이 스와미 비베카난다(1863-1902)로 알려진 나렌드라나드 다타(Narendranath Datta)이다. 1893년 시카코에서 열린 세계 종교회에서 힌두교를 보편 종교라고 소개하여 많은 갈채를 받았는데, 이것은 힌두교에 새로운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그리스도, 메신저”라는 유명한 연설을 통해, 그리스도를 동양인 중의 동양인으로 부각시키면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오히려 힌두교 철학에 대입시켰다. 그는 또한 죄와 구원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와 기독교가 독특하게 계시받은 신앙이라는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자신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4) 타고르와 간디, 이 두사람은 20세기에 매우 다른 방법으로 힌두교 르네상스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타고르(1861-1941)는 힌두교 “르네상스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었다. 그는 시인, 극작가, 소설가, 배우, 작곡가, 교육자, 철학자, 화가 그리고 예언자였다. 또한 그는 신비주의자요 자연과 미의 애찬론자였다. 그의 시는 박티 전통의 신앙적 신비주의와 전 세상을 노래, 아름다움, 만물을 통해 실현된 조화로 보는 자연 신비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타고르는 현대의 세계를 위해 우파니샤드를 그의 경험에 비추어서 재해석했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정치가요 매우 종교적인 금욕주의자였다. 그는 사나타나 다르마, 즉 영원한 율법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이 율법에 대한 권위는 경전에서 보다는 마음과 양심에서 발견하였다. 간디는 이 다르마를 샤트야(진리), 아힘사(비폭력), 그리고 브라마카리야(금욕)라는 기본 사상으로 설명했다. 그에게 “힌두교는 비폭력적 수단을 통한 진리 추구”이다.
3. 힌두교의 경전
힌두교의 경전들은 매우 방대한 여러 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집필 기간만 해도 BC. 1400-AD. 500년경까지 무려 2천년 이상이 걸려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전들 속에는 힌두교가 거쳐온 여러 시대에 유행하였던 종교적 관행과 예배의식, 그리고 교리들이 빠짐없이 집대성되어 있다.
힌두교 경전은 크게 스루티와 스므리티, 이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스루티는 “들은 것”이라는 뜻으로, 리쉬(문자적인 의미는 ‘본 사람’), 즉 예언자들이 보거나 들은 힌두교의 영원한 종교적 진리들을 말한다. 스루티는 힌두교도들이 가장 권위있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주로 베다를 가리킨다.
스므리티는 “기억된 것”을 의미하며, 힌두교도들에게 스루티보다는 이차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경전들이다. 그 이유는 스므리티의 내용들이 상당 부분 스루티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부분 스루티의 내용과 종교적 원리들을 확정시키기 위해 집필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므리티에는 속하는 경전에는 베다를 제외한 모든 다른 신성한 글들, 즉 힌두교의 계율들을 서술한 율법서들, 두 개의 위대한 민족 서사시로 알려진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그리고 힌두교도들의 신화와 민담, 전설 등과 역사적 대사건의 연대기들을 기록하고 있는 푸라나 등이 포함된다. 또한 신학적 논문의 형식을 띤 글과 예배 의식 절차서인 아가마와 힌두교의 6대 철학 체계를 격언 형태로 서술하고 있는 수트라 등도 스므리티에 포함된다. 그 밖에도 어떤 종파들에서는 힌두교의 신앙을 지속적으로 고무하기 위해 이루어진 박티, 즉 헌신의 방법을 담은 방대한 방언 문학 작품들도 스므리티로 받아 들이기도 한다.
1) 베다(The Vedas : BC.1500 - BC.500)는 지식, 또는 지혜를 의미하며 찬송, 기도, 의식, 마술적 신앙고백의 모음집이다. 이것은 다양한 신들의 숭배를 예식적 제사를 통하여 묘사한다. 베다는 가장 오래된 힌두교의 경전으로 원래는 입으로 구전되던 것이 후대에 와서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것이다. 대부분의 신들은 태양, 달, 불, 폭풍, 공기 그리고 비 같은 자연의 힘을 의인화 한 것이다. 죄에 대한 구속의 신학 개념은 명백하고 번번히 강조되고 있다.
집합적인 베다에는 리그 베다, 사마 베다, 야주르 베다, 아타라 베다 등 네가지 종류가 있으며, 이것들은 그 내용이 각각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만트라 - 신에 대한 찬송과 찬양 부분.
(2) 브라마나 -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희생 제사를 집전하기 위한 안내서.
(3) 우파니샤드 - 베다의 결론 부분이자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으로서, 철학적 이론과 영적 진리에 관한 신비적 강화이며 힌두교의 진리와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다. 우파니샤드는 그 수가 10개에서 13개까지 다양하며, 이것에 기초를 두고 있는 가르침을 베단타라고 부른다.
리그 베다는 베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리그 베다에 수록되어 있는 송가들의 주요 내용은 힌두교의 여러 신들, 즉 인드라나 소마, 바루나, 미트라 등을 칭송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우파니샤드(Upanishads)
우파니샤드는 원래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의미하는데, 문자 그대로 이 가르침들은 스승으로부터 제자들에게 비밀스럽고 신비롭게 전수되었다. 우파니샤드는 종교에 대한 사변적인 글들을 모은 책으로서 후기 기독교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대략 BC. 800-BC. 600년경에 이르기까지 거의 2백년에 걸쳐 기록되었으며, 그 중 108개의 글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한 우파니샤드에 수록된 학술적인 글들은 모두 시대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 내용은 초기에는 베다처럼 주로 마술적인 주문과 헌신들을 다짐하는 송가들에 있었지만, 점차 인간과 우주에 대한 신비로운 관념들, 특히 브라만과 아트만의 개념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경전은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우파니샤드의 가르침과 대승 불교의 교훈들이 근본적인 면에서 서로 비슷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러한 기록은 충분히 근거있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3)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이 두 힌두교 서사시는 위대한 국가 영웅들의 공적을 설명함으로써 베다의 원리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라마와 그의 아내 시타 같은 인물들은 개인과 가족, 그리고 국가를 위한 도덕적, 사회적 행동의 이상으로 묘사되며, 현대의 많은 연극과 영화와 전통적인 힌두교 축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라마야나의 저자는 고대의 현자이자 유명한 시인이었던 발미키이다. 라마야나는 무려 2만 4천 개의 2행 대귀 시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슈누 신의 신봉자이자 그의 화신인 의로운 왕 라마의 일대기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에드워드 라이스에 의하면 라마야나의 긴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질 무렵 두 주인공 라마와 시타는 이미 비슈누의 화신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영적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내용의 라마야나는 절대적인 진리를 찾으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힌두교도들에게 본받을 만한 모범적인 인간상을 제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용기를 지속적으로 북돋워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또 하나의 서사시 마하바라타는 BC. 400년경부터 이후 800년 동안의 아리안족의 활동과 역사를 그리고 있는 대민족적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무려 10만 구절 이상의 시귀로 구성된 방대한 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작품 속에 바가바드 기타라는 위대한 고전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마하바라타는 한 가족에서 갈려 나간 두 분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로서, 많은 우화와 대화를 통해 그 시대의 도덕적, 정신적, 그리고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
4)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바가바드 기타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성스런 신에 대한 송가”라는 뜻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힌두교도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사랑받는 경전이며, 오늘날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인도 문학 작품에 해당한다. 이 경전은 단행본이 아니라 1세기경에 마하바라타의 뒷 부분에 부록처럼 덧붙여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인도인들은 물론 세계에서도 많이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힌두 철학의 주류를 요약해 주고 있고 힌두교 영성의 발전 단계에서 처음으로 이 경전에서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란 개념이 도입되었다.
바가바드 기타는 비슈누 신의 여덟 번째 화신인 크리슈나와 자신의 사촌 형제들과의 전쟁을 하려는 전사 아류나(Arjuna) 사이에 오고 간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야기는 신이 인간에게 수행하라고 명령한 의무들은 슬픔에 있을 때도 수행해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전은 인간이 구원을 얻는 주요한 수단으로 박티, 즉 특정한 신에 대한 헌신을 중요시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아류나가 비슈누에게 전적으로 헌신할 것을 다짐하면서 비슈누의 명령대로 자신의 친족으로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비슈누의 명령으로 자신의 친족들을 전장에서 죽일 준비를 하는 대목으로 끝나고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아류나가 고민했던 딜레마와 비슷한 곤경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힌두교인들에게 해결책을 주는 경전이다. 전적인 신에게의 헌신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 경전은 신에게 헌신하는 데에는 남녀 노소나 카스트제도의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신에게 헌신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힌두 사회에서 낮은 계급에서 태어나 업적을 쌓거나 지식을 얻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바가바드의 해결책인 헌신이란 것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5) 푸라나(Puranas)
푸라나에는 신들에 대한 설화, 그 신들에 대항하는 악마 이야기, 그리고 역사상 위대했던 조상들에 대한 전설 등이 다수 수록되어 있으며 힌두교인들에게 서사시 다음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슈누의 화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에 속한다. 가장 대중적인 푸라나는 비슈누의 열 화신에 관한 바가바타 푸라나이며, 마지막 화신인 칼키는 앞으로 올 것이라고 한다. 힌두교인 가정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인 나무 아래서 플릇을 불고 있는 가장 완전하고 성스러운 화신인 크리슈나도 바가바타 푸라나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밖에 푸라나가 다른 경전들에 비해 특징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박티, 카스트, 그리고 다르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특별히 순례 여행과 예배의식에 대하여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 점이다. 푸라나는 정직, 순결,자기 희생 같은 덕행을 보여 줌으로써, 오늘날 힌두교의 도덕적 규범과 윤리관을 형성시키는 데에 있어 다른 어떤 경전보다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6) 아가마(Agamas)
아가마는 힌두교의 주요한 세 갈래인 바이슈나비즘, 사이비즘, 삭티즘이 각각 가지고 있는 신학적 논문과 예배 절차서를 가리킨다. 종파적인 힌두교의 힘 때문에 아가마는 각 종파의 신봉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아가마는 종류가 다양하나 모두 베다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7) 다르사나(Darsana)
아가마는 6대 힌두 철학파가 각각 베다 문헌과 자신들의 교의를 짧은 경구, 즉 수트라의 형태로 체계화한 것을 모은 것과, 나중에 발전한 다르사나에 대한 권위있는 주석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가마에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이라면, 다르사나는 성격상 철학적이어서 학자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힌두교의 철학적 토대
1) 브라만(Brahman)
일반적으로 브라만은 힌두교도들이 영원한 존재 혹은 온 우주의 궁극적인 실체라고 여기며 숭배하고 있으나, 사실은 완벽하게 정의하기가 어려운 개념이다. 그 이유는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말의 원래적인 뜻과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여러번 변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브라만의 개념에 대한 에드워드 라이스의 설명은 많은 도움이 된다.
‘최고의 실재인 브라만은 결코 다른 요소들로 분리되지 않는 단일하면서도 유일한 존재이다. 또한 그것은 정적인 존재인 동시에 동적인 존재이며, 어떤 말로도 완전하게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다.......여러 기록들로 보아 브라만이 어떤 명확하고 구체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비롭고 모호한 추상적인 존재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와 같은 브라만의 개념은 대폭적으로 변화되어 오늘날에는 브라만이 숭배되고 경배되어져야 할 살아 있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깊은 사색과 명상에 잠길 수 있게 하는 철학적인 개념으로서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이처럼 브라만은 베단타학파의 견해처럼 유일하고 추상적이며 모든 곳에 편만한 실체이다. 그리고 비 인격적이고 절대적인 측면에서 신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브라만(Brahman)을 힌두교의 한 신인 브라마(Brahma)나 힌두교의 제사장이나 계급의 하나인 브라민(Brahmin)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우파니샤드 중의 하나에서는 브라만의 개념에 대한 신성한 지혜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이 소금을 물속에 집어넣어 내일 아침 다시 나에게 오너라.” 스베타케투 아루네야는 아버지가 분부한 대로 소금을 물에 집어 넣었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그에게 말했다. “네가 어젯밤에 물속에 넣었던 소금을 이제 다시 꺼내어 내게 가져 오너라.” 스베타케투는 물속을 잘 살펴보았지만 소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이쪽 편의 물맛을 보아라. 물 맛이 어떠하냐?” “짭니다.” “가운데 편의 물맛을 보아라. 물 맛이 어떠하냐?” “짭니다.” “그럼 이번에는 저쪽 편의 물맛을 보아라. 물맛이 어떠하냐?” “짭니다.” “그러면 다시 물속에서 소금을 찾아보아라. 그리고 다시 나에게 오너라.” 아들은 소금을 찾아본 후 다시 아버지께로 와서 말했다. “소금은 볼 수 없고 단지 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오 나의 아들아. 그와 마찬가지로 너의 영혼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는 영혼이 있다. 나아가서 보이지 않고 포착하기 힘든 어떤 본질적인 실체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온 우주의 절대적인 정신이란다.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실체이며 진리이다. 너는 바로 그것이다(타트 트밤 아시, Tat tvam asi).”
2) 아트만(Atman)
아트만은 힌두교의 여러 개념과 용어들 중에서 브라만과 함께 가장 정의하기 힘든 개념에 속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힌두교도들은 아트만을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을 구성하고 있는 영원 불멸의 본질, 즉 자신의 영혼이나 진정한 자아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아트만은 브라만의 한 상에 불과하다. 또 아트만은 우주에 편만해 있는 절대 정신 브라만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브라만과 신비스럽게 결합하여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믿어지기도 하였다.
3) 마야(Maya)
마야는 현상의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 개념의 의미에 대하여 휴스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폭넓게 설명하고 있다.
“마야라는 말이 보통 ‘환상’이라는 단어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마야를 환상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이 세상은 진지하고 중요하며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질 수 없기 때문이다. 힌두교도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런 생각에 절대로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힌두교도들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세계는 눈 앞에 있다는 그 자체로서 이미 사실적인 것이므로 그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4) 카르마(Karma)
카르마의 어원적인 의미는 ‘행동’ 또는 ‘행함’이며, 점차 한 개인의 모든 행동들과 그 행동으로 인해 받게 되는 결과까지를 모두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었다. 다시 말하면 카르마란 모든 행동은 어떤 원인의 결과이며, 또 그 행동은 어떤 결과의 원인이 된다는 자연적인 인과율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다. 카르마는 이런 물질적인 법칙을 정신의 영역과 삶과 과거, 현재, 미래의 영역에까지 확대한 것이다.
카르마의 법칙에 따르면 한 개인이 현재 누리고 있는 지위와 존재 형태는 전적으로 그사람이 전생에 행했던 모든 행동과 업적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나아가 그가 이생에서 행동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의 모크샤(해탈)의 가능성의 크기가 결정된다.
카르마의 법칙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행위에 대하여 철저하게 도덕적, 윤리적 책임 의식을 일깨워 주며, 인간의 육체적, 도덕적 고통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차별적인 계급 제도마저 정당화시킨다.
5) 삼사라(Samsara)
삼사라란 힌두어의 원래 의미는 “옮겨진다.” 또는 “다시 태어난다”라는 뜻이다. 삼사라의 보다 완전한 의미는 인간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생명은 그것이 쌓은 업보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상태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삼사라는 영혼의 재생, 전생, 윤회로 불리울 수 있다.
생명의 이러한 연쇄적인 재생은 힌두교도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 윤회의 고통스러운 굴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카르마의 법칙에 따른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끝없는 윤회를 거듭하면서 모든 영혼은 전생의 업보에 따라 어떤 한 가지 존재 형태로부터 다른 존재 형태로 계속 옮겨간다고 한다. 즉 카르마의 법칙에 따라 높은 카스트나 신의 모습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인간 중에서도 가장 낮은 신분이나 심지어 짐승이나 벌레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삼사라는 카르마와 풀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다.
힌두교도들은 모든 생명체가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이 삼사라의 법칙은 인간과 각종 동물과 벌레, 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체에 적용되는 우주의 자연적인 원리이다.
6) 모크샤(Moksha)
모크샤, 또는 묵티는 “탈출”, “방면”, “자유”, “해방”, “해탈”, “구원” 등 다양하게 번역된다. 모크샤란 카르마의 굴레로부터 인간의 영혼이 해방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모든 힌두교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삼사라의 굴레로부터 도피하는 것이고 카르마 자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인관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한, 출생, 죽음, 재생의 삼사라 과정에 구속된 영혼의 굴레는 계속된다. 모크샤는 모든 의(선행)와 불의(악행)로 부터의 해방이며, 카르마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육체와 영혼의 굴레와 시공의 우주로부터의 해방이다.
따라서 힌두교도들은 누구나 모크샤를 염원하며, 그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충만하고 완전한 세계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게될 이 해탈의 경지는 죽어서 도달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살아 있는 동안에 도달할 수도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대부분의 힌두교도들은 살아서 해탈하게 되기를 더 원하고 있다. 특히 살아있는 동안에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지반무크타(Jivanmukta)라고 불리우며 높이 추앙받는다.
모크샤는 주로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에서 마르가란 영적인 완성을 이루는 방법을 가리킨다.
(1) 카르마 마르가(행동의 길)란 이기심이나 사심이 없는 행동을 통한 길이며, 종교적 의무를 잘 수행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방법이다. 카르마, 즉 열매를 얻기 위한 욕망에서 한 행동은 영혼을 존재의 굴레에 묶어 놓지만,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한 행동, 곧 욕심없는 영적인 완전함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경전과 제사장들에 의해 미리 규정된 의식과 의무, 그리고 종교적 관례들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잘 수행함으로써 예배자는 선한 카르마를 쌓아 내세에서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2) 지나나 마르가(지식의 길)는 힌두교도들이 중요시하는 보다 높은 특정 지식이나 통찰력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 길은 우파니샤드 경전에서 처음으로 가르쳤고, 반동과 부흥의 시대에 마누 법전에 자세히 수록되었다. 이 방법의 기본적인 전제는 인간이 현세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지식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온통 문제거리로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지나나를 얻는다는 것은 어렵다. 마누 법전은 이 지식의 길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생의 네 단계를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학생의 단계, 가장의 단계, 출가의 단계, 고행의 단계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고행의 단계인데, 구루로부터 지식과 묵상의 기술을 배우며, 홀로 고행을 실천하는 단계다. 고행 실천 중에는 가시방석에 앉기도 하고 시력을 잃기까지 태양을 바라보기도 하며, 몇시간 동안 한쪽 발로 서 있기도 하는 자아고행이다. 이러한 행위로 정신통일을 발전시키기 위해 나온 것이 요가이다.
(3) 박티 마르가(헌신의 길)는 연대순으로 보면 구원을 얻는 세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나중에 확립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신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길이다.
박티는 의식적인 예배와 같은 외적인 보조물에 의존할 수도 있고, 신과 직접 영교하는 보다 높은 수준에 있을 수도 있다. 신에 대한 헌신은 신에 대한 사랑에 기초하여야 하며, 다양한 인간관계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예컨대 그의 가족과 주인이나 하인 등 그의 모든 이웃들을 아울러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티 마르가는 카르마 마르가와 함께 많은 힌두교도들에게 인기가 있다. 대부분의 힌두교도인들은 인격적인 신이란 개념이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지나나 마르가 같은 철학적인 구원론에 찬성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성한 화신들과 수많은 지방신들을 경배하는 유신론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인격적인 신에 대한 헌신이 힌두교인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가장 보편적인 신념이며 실천이 되어 있다.
7) 카스트 제도
카스트 제도는 힌두교에만 속한 것으로 수세기 동안 힌두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가 되었다. 그 기원은 백인인 아리안 침략자들과 흑인인 드라비디안 원주민 사이의 피부 색깔 차이에 주로 있었다. 여기서 힌두어 자티(jati)는 “출생”을 의미하는 문자적 단어다.
종교는 카스트 제도의 지속적 연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왜냐하면 각자의 카스트가 각자의 카르마(업보)의 결과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카스트를 얻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첫째는 브라만(The Bramans)으로 승려와 종교 교사를 말하고, 둘째는 크샤트리아(The Kshatriyas)로 왕과 무사가 속한다. 셋째는 바이샤(Vaisyas)로 상인과 무역업을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넷째는 수드라(Sudras)로 경작자와 노예를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3000여개에 달하는 수많은 하위 계급들로 나누어져 있으며 끊임없는 세습을 기초로 두고 있다.
이 네 계급 외에 불가촉 천민 또는 추방당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직업 때문에 부정하다고 간주되었다. 이 천민의 신분은 힌두 사회에 오점이 되어 왔으며, 개혁운동들은 그것을 없애려고 시도하였다. 현대에 와서 간디는 이들을 하리잔(Harijans) 또는 하리(Hari)라고 부르며 신의 백성이라고 불렀다.
리그 베다에 나오는 창조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창조의 신 브라마는 인간의 조상 마누(Manu) 또는 푸루사(Purusha)를 창조한 후에, 그의 희생을 통해 마누의 신체 일부로부터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네 부류의 인간들이 생겨나게 하였다. 그의 머리로부터 브라만이 생겨났고, 양손에서 크샤트리야, 넓적다리에서 바이샤, 바로부터 수드라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신화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카스트 제도는 최고의 신 브라마가 직접 제정한 것이므로 인간의 권위나 권력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으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카스트 제도는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마누 법전에 의하면 카스트 제도는 힌두교의 중심개념에 속하는 카르마와 삼사라에 의해 정당하게 여겨지고 있다. 힌두교인들은 우연히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계급에 속해 있든지 전혀 불평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평생 동안 계급의 규칙과 의무를 엄격히 지키면 내세에서는 더 높은 계급으로 바뀐다고 믿는다.
Ⅱ. 바울의 선교 설교 분석
1. 바울의 선교 신학
바울은 조직신학자가 아니라 선교사였다. 그의 신학은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에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복음을 연구하거나 체계화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 또한 그 확신을 가지고 헌신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을 신학자로 본다면 선교신학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 하나님의 자기계시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19-20).
바울은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그가 만드신 피조물들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계신다고 언급하고 있다. 알포드는 이 구절에 대해, “바울은 지금 저희가 하나님에 대해 알지도 모르는 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이미 알고 있던 바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찾게 하시려는 의도는 바울 선교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
2) 유일하신 하나님
바울이 전한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5-6). 여기서 바울은 하늘과 땅, 곧 우주 전체에 하나님은 한 분뿐이심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유일신 사상은 유대교 사상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울이 가진 유대인으로서의 신분이 하나님이 한 분뿐임을 증거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또 유일하신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에 대하여 도전하고 있다. 바울의 이러한 사상은 구약의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언약을 체결하실 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고 하셨는데, 이 모든 족속에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천하 만민이 포함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일하신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성경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힘입어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약에서의 교회,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존재,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사람, 영적인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유기체적인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3)고 말한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민족적, 신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 안에서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라는 것이 바울의 확신이었다. 바로 이러한 확신이 선교의 동기가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며, 또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하도록 했던 것이다.
4) 복음의 보편성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복음이 한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이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라는 말은 복음 전파와 선교에 있어서 유대인들에게 시간적인 우선 순위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구속사에 있어서 유대인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우선적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복음의 보편적인 성격이 바울의 선교 신학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5)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
바울 서신에서 나타난 바울 선교의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죄는 인간과 하나님의 사이를 멀게 했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소외를 제거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화목케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을 자각하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8. 왜냐하면 구속받은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대상일 뿐 아니라 구원으로 인한 구속 사역의 주체로서 하나님의 사역에 능동적으로 동참해야 하기 때문이다.
2. 바울의 선교전략
바울이 선교 사역을 진행함에 있어서 어떤 전략을 갖고 있었는가에 대하여는 학자들 간에 다른 의견들이 있다. 만일 ‘전략’이라는 말이 “인간의 관찰과 경험을 기초로 한 의도적이며, 인위적인 활동 계획”을 의미한다면, 바울의 선교에는 전략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가 선교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그와 같은 선교여행을 계획하거나 교회를 세울만한 전략적 거점들을 선택하고 나서 그 계획들을 실천에 옮겼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루어진 바울의 선교 여행과 선교 활동 가운데서 우리는 주목할만한 방침들을 찾아 볼 수 있다.
1) 성령의 인도에 순종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였다. 바울을 선교지로 보내신 분이 성령이며(행 13:2-4), 각 선교지로 방향을 제시하신 분도 성령이시다(행 16:6-10). 또한 그의 메시지도 전적으로 성령의 지혜와 권능에 의한 것이었다(고전 2:1-5). 그리고 바울은 성도들에게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할 것을 가르쳤다(갈 5:16).
즉,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음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다.
2) 도시 중심의 선교
바울의 선교전략은 대도시 중심적 선교전략이었다. 바울이 선교한 그 당시의 대도시들은 헬라문명을 주도했던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교통이 편리한 세계 상업중심지였다. 즉 선교한 대도시들이 복음화되면 인근지역의 복음화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전략적 위치 때문이었다.
바울이 활동하던 도시 중 큰 도시에 속하는 에베소를 예로 든다면, 이 도시는 아시아의 중심도시이며, 로마 제국의 정리된 도로들이 잘 연결되었다. 또한 상업이 발달하고 아데미신전이 있어 많은 관광수입을 벌어들였던 도시이다. 이곳에서 바울은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머물면서 선교했고 떠날 때도 디모데를 잔류하게 해서 에베소에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에베소와 마찬가지로 고린도나 데살로니가 등 주로 정비되고 도로가 있으며 활동이 편한 도시들을 대상으로 정거장식 선교를 펼쳤다.
3) 동역자들과의 팀사역
바울은 결코 혼자서 사역을 하지 않았다. 그가 쓴 것으로 인정하는 서신서들에 보면, 바울이 팀사역을 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가르치는 사역을 시작으로, 1차 선교 여행시 바나바와 마가 요한과 함께 동행했다. 그리고 바나바와 마가 요한과 결별한 이후에도 실라를 택하여 함께 사역했다. 즉 바울이 선교사역을 함에 있어 혼자가 아닌 늘 동료와 팀을 이루어 사역한 것을 알 수 있다.
고전 4:17에 보면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면서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내어 그곳의 교회 문제를 처리하도록 했다. 그리고 에베소를 떠나기 앞서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보내기도 했다(행 19:22). 그 외에도 에 보면 베뢰아 사람 소바더,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더베 사람 가이오,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리비모 등이 바울과 함께 했음을 드러내고 있다(행 20:4). 또한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27명의 이름을 일일이 들어가며 문안하고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바울의 동역자들이었다.
그리고 팀을 이루어 사역하는 모델은 예수님이 먼저 보여 주셨다.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둘씩 짝을 지어서 보내셨다(눅 10:1). 이러한 선교 방법론은 바울에 의해 계승되었고 여기에 성령이 함께 하시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연속성을 가지게 하였다.
4) 유대인 회당을 접촉점으로 삼은 선교
바울이 선교 현지에서 가장 먼저 찾아가 선교의 접촉점을 삼은 곳은 유대인 회당이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사도로 택정함을 입었고, 그러한 직분에 특별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한 도시에 도착하면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다. 1차 선교 여행 중에는 살라미 회당, 안디옥 회당, 이고니온 회당에서 설교하였다. 2, 3차 선교 여행 중에는 데살로니가 회당, 베뢰아 회당, 아덴 회당, 고린도 회당에서 설교했다.
바울은 이 유대인 회당을 접촉점으로 삼아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에 자신의 메시지를 들었던 이방인들에게 계속 선교 활동을 하였다. 바울이 회당을 찾은 것은 유대인이 구속사에서 우선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5) 파송 교회와의 긴밀한 협조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금식하고 기도한 후,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 사역에 파송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선교 여행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파송 교회인 안디옥 교회로 귀환하여 선교 사역을 보고하였다. “거기서 배타고 안디옥에 이르니......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행 14:26-28.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과 이방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함으로써 파송 교회로 하여금 선교 사역에 더욱 정진하도록 동기 부여를 했던 것이다. 바울이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파송 교회와의 긴밀한 협력과 기도의 후원에 힘입었던 것이다.
그의 이방인 선교는 예루살렘 교회의 축복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며, 이를 위하여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다섯 차례나 방문하여, 그때마다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짐으로서 유대계 기독교와 이방계 기독교 사이의 분열이 확대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3. 바울의 설교 신학
설교 사역은 네 가지 본질적인 요소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하나님, 메시지, 설교자, 청중이다. 구원의 믿음을 증거하는 설교의 목적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이 네 가지 요소가 모두 기능을 온전히 발휘해야 한다. 바울의 설교에는 이러한 네 가지가 잘 녹아들어가 있다.
1) 제 1 원리
말씀의 선포는 필요하며,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그리고 기독교 믿음에 의한 양육을 위하여 필수적이지만 충분치는 않다. 제 1 원리는 케루소와 유앙겔리오라는 두 헬라어 단어를 사용함으로 알 수 있다. 두 단어의 뜻은 각각 “선포하다”와 "전달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바울이 유앙겔리오라는 말을 사용할 때 어떤 행위가 은혜를 전달한다는 중세기의 성례전적 사고 방식과 같이 설교 행위가 어떤 결과를 자동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설교가 선포되어지는 내용이 진리이며 선포하는 설교자가 감동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신비하고 마술적 방법으로 어떤 내용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선포되어지는 메시지에 대한 믿음과 그 메시지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응답이 있어야만 설교인 것이다.
2) 제 2 원리
말씀의 선포는 단순히 복음의 내용을 알려주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없이는 어떤 메시지나 말씀에 능력이 없는 것이다.
성령님은 설교 사역 가운데서 역사하신다. 설교자를 통해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듣는 사람들 속에서도 역사하신다. 무언가 역사가 일어나도록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 사실과 설교자들을 통한 그 사실의 증거가 모두 필수적이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하게 하시기 위하여 청중들의 경험을 통해 나타내 주셨다.
바울의 설교는 역사, 자연, 인간, 경험 등을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거룩한 계시의 망원경을 통해 해석하는 것이었다. 현대의 설교자들은 출처에 상관없이 진리를 무시할 수 없다.
3) 제 3 원리
복음 메시지의 선포는 약속의 선포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과 화목하셨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다.
복음의 선포는 믿음으로 가능한 소망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는 것이다. 청중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겨나는 하나님과의 화목과 세상과의 화목함에 대한 약속을 믿도록 초청되어지는 것이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가고 있다는 확신에 찬 기대를 가지고 산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견고히 붙잡고 우리들의 경험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바라보면서 그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다.
4) 제 4 원리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말씀과 메시지와 약속을 선포하는 것과 청중들의 경험 속에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개입하셨는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설교가 그와 같은 약속의 성취를 선포하지 않는다면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믿음 대신에 행위를 통하여 의로워진다는 믿음을 전파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설교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이루어지며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청중에게 받아들여지고 또 실행되어 질 때 성취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고 역사적 예수님을 아는 것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아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은혜를 얻기 위해 헌금을 하라고 요구함으로써 마치 행위를 통한 구원의 교리를 선포하는 경우도 있다. 바울은 성령님의 능력과 역사를 선포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 영적 통찰력을 주시는지를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고 계신다. 바울 설교의 많은 부분은 하나님이 이 세상 가운데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잘 분석하였고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잘 설명해 주었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으며 무엇을 하고 계시고 그리고 무엇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Ⅲ. 바울의 아테네 설교
1. 설교 상황과 대상
세 차례에 걸친 바울의 전체 선교여행 경로를 보면, 그는 소아시아에서 시작하여 그리이스로 옮겨 갔고, 그 후에 로마로 갔으며, 마지막에는 스페인까지 가고자 하였다. 그가 그리이스로 옮겨 간 것은 제 2차 선교여행 때였다. 그는 성령의 특별한 인도로 소아시아에서 그리이스로 건너갔다. 그는 어느 날 밤 드로아에서 환상 가운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손짓하며 그 곳으로 와 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보았다(행 16:9-10).
제3차 선교여행이 끝 난 후 로마로 갈 때도 그는 자기 앞에 험란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심령에 매인 바 되어(행 20:22) 무엇인가에 끌려가듯 예루살렘을 향하여 갔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로마였다. 이와 같이 바울의 선교활동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바울의 계획이나 열망 없이 숙명론적으로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아테네로 간 것은 선교전략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복음 전파자로서 뛰어난 전략가였다. 세 차례에 걸친 그의 선교여행 경로를 보면 그는 무역로 항구,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을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한 번 방문한 곳을 재차 방문하여 현지 교인들을 돌보는 전략을 취하기도 하였다(행15:37).
아테네는 당시 5,000명 정도의 시민을 가진 조용하고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였다.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소포클레스, 투키티데스, 플라톤, 스크라테스의 고향이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 있었고, 또한 이 곳은 철학, 문학, 과학 그리고 예술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이 곳은 복음을 전파하기에는 척박한 땅이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숭상하는 아테네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곳에 복음의 씨를 뿌려 싹을 낼 수만 있다면 그 파급효과는 대단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복음 전파가 어떤 방식으로든 유익한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신약 교회를 전체를 내다보고 있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루스드라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설교를 하였다. 그는 신론 중심적이고 자연계시적인 설교를 하였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대상에게 설교하는 것이므로 새로운 내용으로 설교하였다.
1) 설교의 상황
(1) 바울의 마음에 일어난 분노(행 17:16)
바울은 두 번째 선교여행 중 성령의 특별한 인도 가운데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니아 지방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다. 그는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이 지방의 첫 성(城)인 빌립보 그리고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였다(행 17:1). 이곳에서 그는 약 1개월 간 머물며 예수는 메시야라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베뢰아를 거쳐 아테네까지 오게 되었고, 바울은 여기서 데살로니가로 떠났던 디모데를 기다리고 있었다.
디모데를 기다리면서 아테네 거리를 거닐은 바울은 이곳 저곳을 둘러 보는 가운데 아테네가 우상으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된다. 아테네에서는 사람보다도 신을 발견하기가 더 쉽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상이 많은 도시었다. 바울은 그 우상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분노를 갖게 되었다. 참신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간이 만든 형상들을 이곳저곳에 세워 놓고 그것을 신이라고 섬기는 모습에 분노를 느낀 것이다.
(2) 바울의 회당과 저자에서 변론(행 17:17-18)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바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과 장터로 갔다. 그는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과 토론하였다. 매일 그는 장터에서 사람들과 변론하였다. 이렇게 토론하는 중에 바울은 에피쿠러서 학파에 속한 사람들과 스토아 학파에 속한 사람들과도 논쟁하게 되었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향해 말하기를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가?”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낯선 신들을 전하는 자인가 보다”라고 하였다.
아테네 철학자들이 바울더러 ‘말쟁이’라고 했던 것은 그가 자기들과의 논쟁에서 밀리지 않고 말을 논리적으로 잘 하는 것을 무시하고 깍아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바울이 이런 저런 지식들을 주워 모아 가지고 그럴싸한 말로 떠들어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헬라어 스페르몰로고스(σπερμολόγος)는 “정보의 편린들을 주워 모으는 자”란 뜻이 있다. 그들은 바울이 남의 한 말들을 모아가지고 자기의 생각인 양 선전하는 사람으로 보았다.
또 사람들은 바울을 이방종교를 전파하는 자로 보았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와 몸의 부활을 전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일부 사람들은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므로 그가 어떤 새로운 두 신을 전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아테네의 철학자들에게 특히 부활은 생소하게 들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혼불멸 사상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육체는 영혼의 감옥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 육체를 벗어버린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믿었다. 이러한 견해로 인해 그들은 바울이 전파하는 육체의 부활이 저급한 사상이라고 생각하였다.
(3) 상황의 발전(행 17:19-21)
바울의 말들은 철학자들의 호기심을 유발시켰다. 그들은 바울을 체포하지 않고 장터에서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갔다. 이는 바울에게 최고의 법정에서 그의 가르침에 대해 변명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아레오바고는 헬라어 아레이오스(ᾊρειος)와 파고스(πάγος)를 영어식으로 합성한 것을 한글 개역성경이 한국식으로 음역한 것이다. 원문에서는 아레이오스(ᾊρειος)와 파고스(πάγος)가 따로 떨어져 있다. 아레이오스 파고스는 “아레이오스의 언덕”리아는 뜻이다. 아마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위치해 있던 이 언덕에서는 반짝이는 화성이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헬라인들에게 화성은 “전쟁의 신”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이 신이 전쟁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태양계에서 지구 다음으로 멀리 있는 행성에 이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바울 당시에는 단순한 지명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즉 그것은 고대 최고의 법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고대 시대에 아레이오스의 언덕에는 로마의 공공 기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곳은 아테네 사람들의 생활 중심지로 변모하여 갔다. 여러 기관들 중 아테네 사람들은 사법, 행정, 교육을 관장하는 30인 법정을 가장 권위 있게 여겼다. 하지만 이 기관은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의 민주주의 발달로 인해 그 권위를 대부분 상실하였다. 그러나 이 기관은 로마제국의 비호 아래 그 위엄을 상당 부분 되찾았다. 로마제국 시대에 이 기관은 대중 연설자들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바울이 아레오바고로 초대되어 이곳에서 설교를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 설교의 대상
바울의 설교의 대상은 매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아테네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울의 아레오바고로 데려가며 바울에게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이 새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무슨 이상한 것을 가져와 우리 귀에 들리게 하니 이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고자 합니다”(행 17:19-20). 여기서 “가르침”은 헬라어로 ‘디다케(διδαχή)’이다. 그들에게는 바울의 가르침이 너무 새로운 것이어서 그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였다. 누가는 아테네 사람들이 왜 이렇게 했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는 아테네 사람들과 그 곳에 사는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들을 말하고 듣는 외에는 시간을 달리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새로운 사상들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지식의 최첨단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2.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
1) 설교의 시작(행 17:22-23)
바울은 아테네 철학자들의 초청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아레오바고로 가서 그 곳에서 설교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서두를 시작한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가 보니 여러분은 범사에 종교성이 많습니다. 두루 다니며 여러분이 경배하는 것들을 보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경배하는 이것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합니다”(22-23).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있어 이 서두는 자극적이면서도 자기들에 대한 칭찬의 말로 들렸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청주들의 종교생활에 대한 자기의 느낌을 간략하게 말함으로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그들과의 접촉점으로서 그들의 종교성을 거론했던 것이다. 바울은 지혜롭게 “(여러분이) 범사에 종교성이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종교성이 많습니다”는 헬라어로 ‘데이시다이모네스테루(δεισιδαιμονεστερους)’이다. 이 단어는 행 25:19에서 베스도에 의해 다시 사용되는데, 두 곳 모두에서 이 말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경외심과 종교적 헌신을 가르킨다. 사람들은 어떤 측면이 됐든 자신들에 대한 평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도 그들은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최소한 중간정도의 평가라도 받고 싶어하는데 이러한 것을 바울은 아우르며 거론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곧바로 왜 그런 평가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준다. 그는 자신이 직접 아테네 거리를 돌아 다니며 본 것을 말한다. 그 중에 특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어느 신이 복을 주고 화를 주는 지 알지 못하여 이런 제단을 세우고 막연한 신격을 향해 제사를 지냈던 것 같다. 바울은 자기가 본 것을 근거로 그들에게 “범사에 종교성이 많습니다”라고 평가하였다.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을 보고 이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한 문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한 그것은 종교성이 많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바울의 말을 듣는 청중들은 바울이 정확한 말로써 자신들의 종교성을 통찰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설교자의 말은 정확성을 유지할 때 설득력과 집중력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은 바로 이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섬기는 신을 자신이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이 말 또한 청중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란 역설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신을 알고 싶어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말은 그들이 알고 싶어하지만 알지 못하는 신을 알려 주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듣는 청중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서두의 진행은 속도감과 연결성이 매우 좋다. 또 청중들이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내용을 주제로 삼음으로 좋은 접촉점을 마련하고 있다. 또 “새 가르침”이라고 하는 주제의 부각은 복음을 전하기 좋은 준비가 되고 있다. “새로운 가르침”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청중들에게 거의 “새 종교”라는 뜻으로 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설교의 전개(행 17:24-29)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이 유대 역사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진술함으로써 참되신 하나님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초월성과 충족성을 언급한 후에 인간의 한계성에 대해 진술한다. 그리고 그는 바른 신관을 정립할 것을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청중들에게 회개할 것을 권하며 설교를 마무리 한다.
(1) 하나님의 초월성과 충족성(행 17:24-25)
바울은 하나님의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늘과 땅의 주재자로서 사람이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시라고 선언한다(24절). 그는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참되고 유일하신 하늘과 땅의 주재자이시라고 강조한다. 이는 그가 지성적이고 철학적인 아테네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기 위해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유신론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그는 아테네 사람들이 신전을 화려하게 꾸며 놓고 거기에 신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믿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바울은 하나님이 신전에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창조주시오, 천지의 주관자시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생명의 원천이 되시며 천지의 주관자로서 온 우주의 주재자가 되시는 분이시다. 그는 신전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시다.
또 바울은 하나님의 충족성을 강조한다(25절). 그는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이 손으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신적 생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앞에 제물을 바치고 복을 비는 사실을 염두이ㅔ 두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인간의 제물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시다. 그는 인간이 바치는 음식이나 술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시다. 도리어 하나님은 인류에게 생명과 호흡, 그리고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 인간의 한계성(행 17:26-27)
바울은 이제 인간의 한계성에 대해 말한다. “그는 인류의 모든 민족을 한 혈통으로부터 만드셔서 온 땅의 표면에 거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미리 정해진 때와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이 말은 두 가지 포인트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 분께 의존되어 있다.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경배해야 마땅하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그 분께 경배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이다. 인간에게 이 수직적 요소는 절대적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온 인류를 만드셨다. 따라서 온 인류는 전체로서 하나의 연합체이다. 인간이 인류 공동체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전쟁은 이 하나 됨의 의식을 상실한 데서 비롯된다. 인간에게 이 수평적 요소는 필수적이다.
둘째, 인간은 시간적, 공간적 한계성 속에 살도록 규정된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미리 정해진 때와 거주의 경계를 따라 살도록 한정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를 어떻게 관리하시는지와 관련된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시간과 공간의 한계성 속에 살게 하셨을까? 그것은 인간으로 “하나님을 찾아 혹 더듬어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었다”(27절a).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시간적, 공간적 한계성 속에서 당신을 찾고, 당신을 발견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절감할 때 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자연계시의 빛 아래서 하나님을 찾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혹 더듬어 발견하게 하려”라고 하는 말은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을 암시한다. “더듬는다”는 말은 어둠 가운데서 무엇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을 가리킨다.
그럼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바울은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대신 바울은 “그는 실로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27절b)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시므로 알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너무 멀리 떨어져 계셔서 만나기 어려운 분이 아니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바울은 아마도 이방종교들이 신에게 도달하려면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으로 하나님의 근접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각자에게”라고 하는 말은 각 개인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3) 바른 신관을 정립할 것을 촉구함(행 17:28-29)
바울은 청중들에게 바른 신관을 정립할 것을 촉구한다. 그는 하나님을 사람이 만든 우상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먼저 인간이 하나님, 즉 인류를 한 사람으로부터 만드시고, 그들로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경계 안에서 살게 하시며 각 사람과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고 진술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존재이다.
인간이 의존적 존재라고 하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바울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그들이 잘 아는 시인의 한 시구를 인용한다. “여러분 중의 어떤 시인들도 ‘우리는 또한 그의 자손이라’함과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손이기 때문에......”(28b-29a). 이 말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손이다. 한편 이 말은 앞에서 한 말들, 즉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인간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화시켜 준다.
이렇게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손임을 선언한 후 청중들에게 도전적 권면을 한다. “신적 존재를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조각한 금이나 은이나 돌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29b). 이 권면은 그의 청중들이 신 숭배 문제에 있어서 논리적 파산자로서 살지 말라는 뜻이다. 종교생활에 있어서 논리적 모순성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바울의 뜻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손이 어찌 그를 인간의 아이디어와 기술로 만든 우상과 동등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손인 인간이 어찌 예술이나 상상력을 동원하여 고안해 낸 것들을 하나님과 동등시 하려느냐는 것이다. 우상은 인간의 우매의 극치이다. 금이나 은이나 돌은 하나님을 표상할 수 없다.
3) 설교의 마무리(행 17:30-31)
위와 같이 도전적 발언을 한 후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이 회개 촉구의 이유가 무엇인지 밝힌다.
(1) 하나님의 회개 촉구에 대한 언급(행 17:30)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알지 못하던 시대를 간과하셨으나 지금은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회개하라고 사람들에게 전파하신다”고 말한다. 이는 바울이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회개의 명령을 빌어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그럼 “알지 못하던 시대를 간과하셨다”는 말은 무엇인가? “알지 못하던 시대”란 지금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아직 복음이 오지 않은 시대, 즉 그리스도의 초림 이전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에 이스라엘 밖에 있던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들을 이스라엘이 우상숭배 행위를 할 때 징벌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징벌하지 않으시고 인내로써 용서하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그들에게는 이스라엘에게 적용했던 징벌 기준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우상숭배 행위에 대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듯 하시지 않으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공평한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회개하라고 사람들에게 전파하셨다”는 말은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방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징벌에서 면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서나 모든”이라는 말은 구별된 처우를 받아왔던 이방민족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복음시대에는 우상숭배를 회개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아무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회개 촉구의 이유 제시(행 17:31)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은 그가 “정하신 사람으로 세상을 의로 심판할 한 날을 세우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하신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바울이 이렇게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아무튼 하나님이 그가 정하신 어떤 사람에게 심판권을 주었다는 것과 심판날이 그에 의해 작정되었다는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인간에게 반드시 심판이 있고, 심판의 행사는 정해진 한 사람에 의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위와 같은 사실을 하나님이 “그 정해진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입증해 보이셨다고 주장한다. 이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신 일을 언급하는 내용으로 이 부활 사건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권을 행사하실 것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직접적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핵심 개념으로 삼아 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간접적인 방식으로, 즉 하나님의 자연계시를 기본 뼈대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바울은 대상이 이방인 불신자들이고 따라서 설교가 신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설교가 신론 중심이라 해도 기독론적 내용을 적절히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4) 설교 후의 반응(행 17:32-34)
바울의 설교에 다양한 반응이 나타났다. 부정적 반응, 중립적 반응, 그리고 적극적 반응이 동시에 나타났다. 아마도 바울은 이것을 예측했을 것이다. 특히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바울의 언급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였다.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점잖게 이 주제로 다시 듣고 싶다고 하였다.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라고 하는 새로운 가르침에 호기심이 끌렸다. 그런데 아주 적극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가는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 가운데 믿은 자들이 생겨난 사실을 의미있게 보도한다. 그는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 다마리라 하는 여자,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믿었다고 증언한다. 이러한 결과를 안고 바울은 담담히 아레오바고를 떠났다.
바울의 아테네 설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실패한 설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교사로서 여러해 동안 한 사람의 회심자를 얻지 못하고 고생해본 사람이라면, 바울의 이 아테네 설교로 인한 회심자들은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다. 헬라 문화의 꽃인 아테네에서 그것도 철학과 여러 관념을 접한 사람들에게서 얻은 결과라고 한다면 이것은 대단한 것이다.
Ⅳ. 바울의 인도 힌두교에 대한 선교전략 전망
1. 선교적으로 접근 전망
1) 선교 베이스 구축
바울이 인도에 와서 선교를 했다면, 제일 먼저 했을 것은 선교 베이스 구축이었을 것이다. 먼저 대도시에서 선교를 시작했을 것이고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찾았을 것이다. 바울은 선교지에 도착하면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서 유대인들과 접촉을 했다. 그리고 현지 상황과 언어를 아는 사람과 함께 사역했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그 중 대표적인 사례다.
바울이 가지고 있는 언어 베이스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다. 그러나 인도어와 인도가 가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알려면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도와줄 사람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선교 베이스를 구축하고 회당이나 유대인들과 접촉으로 선교 기초를 마련할거라 본다.
적어도 언어와 문화, 종교를 알기 위해서는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릴 수 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 지역에 있는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선교 베이스를 구축한다면, 이러한 수고는 덜 할 것이다. 언어와 문화를 아는 유대인을 전도함으로 인해 그들이 제자가 되어 그 지역을 선교한다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입장에선 당연히 선교 베이스 구축이 최우선 과제였을 것이다.
2) 동역자를 세움
바울의 다음 과제는 동역자를 세우는 것이다. 아마도 혼자서 인도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나바나 실바와 같이, 그리고 누가, 디모데, 마가 등등 많은 동역자와 함께 사역을 했던 바울은 인도 선교도 팀으로 왔을 것이다.
그리고 베이스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동역자를 세워나갈 것이다. 바울이 인도를 떠나도 남아서 선교 베이스를 구축하고 꾸준히 선교하고 확장시킬 동역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모데, 디도, 에바브라, 데마, 아킵보, 브리스길라, 아굴라, 아볼로, 뵈뵈, 아바브로디도 등이 대표적인 동역자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유대인, 헬라인,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주인과 노예 등 신분의 차이와 상관없이 주를 믿는 모든 자는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다.
3년 동안 에베소에서 가르치고 목회한 것 처럼, 인도에 선교 베이스를 이루어 가면서 동시에 교육으로 동역자를 세워 갔을 것이다.
3) 개인 전도를 통한 선교
바울이 주로 쓰는 것은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하는 것이다. 인도어가 잘 안되었다 하더라도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고 그는 전도하러 다녔을 것이다. 바울은 개인 전도를 많이 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딤후 4:19-21; 골 4:7-17 등에 보면 수많은 이름들이 나열하고 있다. 이들은 바울이 전도 여행시에 개인적으로 복음을 증거하여 동역자로 삼은 사람들로 생각된다.
바울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그들에게 그의 변화된 삶의 간증을 나누었을 것이고 상호 신뢰 관계를 형성함으로 인해 제자로 다시 재생산 했을 것이다. 그것이 유대인 회당이 되었든 지역의 유력자의 큰 집 안에서든, 아니면 힌두템플 주변의 큰 거리에서든 바울은 복음을 들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전도했을 것이다. 그것이 브라만이 되었든 불가촉 천민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4) 성령 중심의 선교
바울의 선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성령과의 동행이다. 바울은 선교사역에 있어 성령의 도움없이 사역한 것은 하나도 없다. 즉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사역을 이루었다(행 13:2-4; 16:6-10; 20:22-23). 성령께서 바울을 어떻게 인도하셨고 안디옥에서 구별하여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 사도행전은 분명하게 말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디옥 교회가 금식할 때에 성령님은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울 것을 명하셨고 그 이유는 “내가(성령)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행 13:2)라고 하셨다.
2차 선교여행때도 행 16:8,9 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고 누가는 쓰고 있다. 그리고 행 20:23,24 에 보면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로 말씀하고 있다.
인도 힌두사회에서 바울이 성령의 인도와 동행없이는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며, 이것은 인도의 부르심도 성령의 인도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인도 선교의 전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가상의 상황에서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이 받아들여질 만한 사람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찾아가면서 전도했을 것이며, 방향과 전략도 그에 따라 맞추어서 사역했을 것이다. 성령과 동행하고 그 인도하심에 바울은 전적인 순종과 헌신만이 나타나고 있고 바울 사역의 중심은 성령이기 때문이다.
5) 이적과 신유 선교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보면 많은 이적을 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적이 선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많은 해결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바울의 이적에는 큰 특징이 있다.
그것은 이적과 신유로 바울의 메시지와 사도로서의 권위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즉 이적과 신유로 영향을 준 것은 사람들의 집중과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권위가 세워짐으로 인해 그의 메시지에 힘이 붙게 된 것에 있다. 행 13:4-12에 보면 박수 엘루마에게 앞을 못보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박수 엘루마는 바울을 대적하고 총독 서기오 바울이 믿지 못하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한 바울이 영적인 권세로 엘루마 눈을 멀게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총독은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게 된다(행 13:12).
그리고 행 14:8-18 에는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치는 사건이 있다. 여기서 바울은 앉은뱅이를 고침으로 인해 루스드라 사람들이 자신과 바나바를 제사 지내려하는 것을 보게 된다. 거룩한 분노를 드러내며 이러한 상황에서 전도설교를 한다. 이 설교로 인한 열매는 나와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적과 신유를 선교하는데 있어 접촉점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계획되거나 의도된 것이 아닌 순수하게 아픈자를 향한 목자의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며, 선교를 위해 필수적으로 행한 것은 아니다.
행 16:16-34 에는 빌립보에서 행한 기적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계획하고 의도해서 일어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줌으로 인해 핍박을 받고 옥에 들어갔지만, 기도와 찬미로 시작된 큰 지진과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벗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여기서도 의도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간수와 온 집안이 구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빌립보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봐도 바울의 사역에 있어 기사와 신유는 빠지지 않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적과 신유는 복음 확장에 있어 시작점과 접촉점을 연결해 주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뿐 거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면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힌두 사회에서도 바울의 이적과 신유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꼭 있을 것이라고 할 수 도 없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의 종교적 환경과 문화에서 신유와 기적만큼 접촉점을 가져다 주는 것도 없다. 힌두교 자체가 초월을 바라고 얻기 원하는 것에 있기에 보여지는 이적과 신유야 말로 선교에 있어 시작점과 접촉점을 마련해 주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손에 달려있다.
2. 설교학적으로 접근 전망(아테네 설교를 중심으로 적용)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을 근거한 생각이며, 물론 성경을 토대로 하고 그 당시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서 이뤄진 것이지만, 그 한계성 또한 알아주었으면 한다.
1) 주위 집중을 위한 접근법 시도.
아테네에서는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 17:22)하면서 접근을 시도했다. 아테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을 토대로 주위를 환기시키고 접근을 했던 것이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그리고 바울이 돌아다니며 본 것을 토대로 파악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힌두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종교성과 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여러 모양으로의 헌신들을 가지고 바울이 접근하려 했을 것이다. 아니면 카스트를 이용한 전략이나, 불교의 부흥을 적절히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힌두교를 중점으로 생각한다면, 그 당시는 반동으로 인한 힌두교의 부흥으로 특징지워진 시기이다. 즉 마우리아 왕조 몰락 후 힌두교는 두 개의 위대한 힌두교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와 마하바라타(Mahabharata)가 기록된 서사시 시대로 이어졌으며, 이런 힌두교의 부흥은 증가하는 불교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 기간 동안 기존의 율법을 성문화 하려는 시도가 있게 되었고, 또한 아리안 문화와 비(非)아리안 문화의 계속적인 통합이 있었다. 그리고 비(非)베다적 문화에서 기원한 브라마(Brahma, 창조의 신), 비슈누(Vishnu, 보존의 신), 시바(Siva, 파괴의 신), 이 3대 신들에 대한 유신론적 운동들이 일어나 힌두교가 크게 부흥되었던 시기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바울은 이러한 시기의 힌두교를 보았을 것이고 여기서 접촉점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삼위일체처럼 보이는 브라마와 비슈누, 시바를 가지고 참인 삼위일체를 설명했을 수도 있고, 불교의 부흥과 그 반동의 힌두교를 보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선교에 있어서의 접근일 뿐, 바울은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하고 어느 정도까지 건드려야 하는 지를 잘 알았을 것이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든 힌두 템플에서든 바울은 힌두교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집중하게 하며, 호기심을 유발하도록 그들이 생각하고 있었고 갈망하던 것을 건드렸을 것이다.
2) 예수와 부활을 주제로 설교했다.
행 17:18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을 전함을 인함이라”고 하면서 바울이 예수님의 중보사상과 부활을 주제로 설교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아테네 학자들이 부활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고 잘 몰랐음을 바울이 알고 의도적인 접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힌두교에서도 부활은 없다. 단지 끝없는 윤회와 신들의 아바타라(avatara, 강림)만 있을 뿐이다. 힌두사회에서는 부활이란 신이 보여주는 이적으로 필요할 뿐, 구원에 있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 아들이란 개념은 당연히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론을 우선으로 언급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의 하나님으로 오셨고, 사랑의 하나님으로 오셨으며, 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냈을 것이다. 또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이것을 믿는 모든 자에게도 똑같이 부활을 선물로 주신 것은 곧 윤회의 사슬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힌두교에는 없는 혁신적이고 초대형 충격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힌두교권 선교사들은 이것을 제일 먼저 드러내어 선교를 한다. 죄와 죽음의 사슬에서 그리고 윤회의 끊임없는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고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갖고 있는 의미와 영향은 엄청난 것이다.
카스트가 낮을수록 죄와 죽음의 연결과 윤회는 운명론적 허무와 자족에 사로잡힌 힌두교인들에게 있어서 정말로 복음인 것이다. 바울도 힌두교를 연구하고 곁에서 지켜보았다면 아테네에서 아테네 철학자들이 모르고 있었던 신과 육체의 부활을 선포한 것처럼, 당연히 이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3) 하나님을 주제로 설교했다.
힌두교는 수 많은 신들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유명한 여배우를 신으로 모시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신을 참 좋아하고 생활화된 문화이다. 아테네에서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불가지론적인 신의 제단을 지적하면서 하나님만이 참신이시고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종교성을 가지고 접근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의 개념 중 다양성과 전지전능함을 한 분이신 참신 여호와 하나님을 변론하면서 드러낸다. 즉 하나님의 독립성, 완정성, 자기 충족성, 무한성 등을 논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생각의 오류 속에 자기 나름대로의 신들을 가두어 두려는 모든 시도들을 지적하였다(행 17:22-26).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즉 일반적인 자연계시로 하나님의 존재와 위엄을 계속적으로 보여주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과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까지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을 내포해서 선포하고 있다(행 17:27,28).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상 숭배의 허탄함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함과 동시에 구속주요 재림주이신 심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행 17:29-31).
힌두교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 선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독립성, 그리고 전지전능함과 충족성 등을 먼저 언급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강조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힌두교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주관과 창조에 대한 이해에 대해 무엇보다도 먼저 변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흙에서 태어났다고 자부하며 자긍심을 가졌던 아테네 사람들처럼 힌두교인들도 각자의 카스트에 따른 생각과 그 안을 이어주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선포했을 것이고 인간은 피조물일 뿐 창조주가 될 수 없음을 논증적으로 인식시켰을 것이다. 바울이 익히 알고 있는 화려한 수사법으로 논증적인 선포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강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편재성과 초월성을 논증하면서 어떤 조각이나 형상에 얽매일 수 없음을 증거했을 것이다. 힌두교의 수많은 신의 형상과 조각들이 인간의 죄 속성에서 온 것임을 드러내고 이에 따른 모든 행위를 재정립해서 선포했을 것이다.
또한 수많은 다양한 신과 아바타라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충족성과 독립성을 논증하면서 이것이 가진 의미와 허무함, 그리고 한계를 드러내주고 여기에 하나님의 완전성을 선포함으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바울이 가진 열정과 성경에서 보여주는 기질 상 강하게 주장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어쨌거나 바울은 한계를 가진 피조물이 무한자가 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오류가 있음을 깨우쳤을 것이다. 그리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성격과 주권 안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고, 구속사를 인식하게 된다고 강조했을 것이다.
4) 회개와 심판을 주제로 설교했다.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며 회개해야 한다고 바울은 설교 말미에 선포했을 것이다. 회개와 심판은 바울이 선포하는 내용 중에서도 중요한 주제이다.
회개없이는 하나님께 갈수 없고 심판 주를 인정해야 만이 역사를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힌두교 안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에게 이후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니, 하나님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권면했을 것이다.
바울은 구속주이시고 재림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강조하고, 인간이 가진 허무함과 한계를 깨달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또한 바울이 힌두교의 회개와 심판이 좀 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회개와 심판에 대한 논증도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선포했을 것이다.
바울은 분명히 힌두교의 약점과 한계를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앞서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스스럼없이 선포했을 것이다. 또한 그가 경험한 일을 가지고 접목하여 회개함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영향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리고 심판주의 의미와 힌두교의 역사관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었을 것이다.
영원토록 돌고 도는 윤회의 수레바퀴가 끊어지고 멈춘다는 것은 힌두교도 들에게는 충격이다. 죄의 자복과 회개함으로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졌다는 것은 놀라운 복음이다. 그러므로 죄의 회개는 성령의 체험까지 인도하는 것이기에 바뀐 법적인 위치는 참으로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5) 청중과 상황을 이해하고 설교했다.
바울은 청중을 이해하고 설교했으며 그 상황을 인식하며 선포하였다. 즉 바울이 가지고 있는 복음의 진리와 참 빛을 무분별하게 끌어 맞추려 하지 않고, 적절한 청중 인식과 상황의 이해는 최상의 설교와 선포로 이어졌었다.
인도의 어느 지역에서 그리고 어느 도시, 어느 힌두 템플에서든지, 바울의 청중과 상황 인식은 그에 맞게 이루어 졌을 것이다. 또한 힌두교의 특징과 생각, 그리고 철학도 이해하고 설교했을 것이며, 인도의 역사와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맞게 맞추어 갔을 것이다.
물론 바울이 이천년 전에 인도에 갔었다면, 불교가 부흥하고 힌두교 또한 이에 반동하여 쇄신하고 발전하고 있었을 때이다. 그러므로 불교권에서 전파했을 가능성도 분명있지만, 힌두교만 생각하기로 했기에 힌두교에 연관해야 이어가겠다.
그 당시 힌두교적 청중은 교육받은 사람이기보다는 종교적 관심이 많고 생활에서 얻은 체험으로 일상생활을 영유하는 사람들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높은 카스트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뿐이었기에 일반의 보통사람은 교육보다는 생활의 체험과 종교 철학을 알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청중을 이해할려면 역사적 상황과 종교적 상황을 인식해야만 했을 것이다.
아리안족의 침입과 점령, 그리고 그로인한 힌두교의 영향까지 알게 되었다면 바울의 태도와 생각도 그에 맞게 갖추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주셨다는 정확한 소명의식과 하나님께서 이곳에서도 말씀을 받을 만한 사람을 준비해 두셨다는 확신을 가졌다면, 바울의 비젼과 눈높이도 여기에 맞추어져 있었을 것이다.
바울의 상황화는 놀라운 신학적 고찰과 그 당시 지역적인 철학과 문화, 역사를 정확한 인지한 결과에서 나온 작품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 당시에 맞게 풀어서 쓴 바울의 고견과 영적인 안목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기에 힌두교적 사회에 왔을 때에도 이런 바울의 영적인 안목은 주위를 살피고 어떻게 진리의 복음이 잘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할지 생각했을 것이다. 틈을 살피고 접촉점을 알아보면서 상황화를 이끌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삼위일체 개념이 정립되지도 않았던 상황에서 힌두교의 브라마, 비슈누, 시바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맞는 개념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브라마와 창조주 하나님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았을 것이고, 비슈누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또한 비슈누의 아바타나에 대해서도 연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바와 성령의 연관성과 구별성도 연구했을 것이고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하는 차별성과 충족성, 그리고 완정성을 분명히 구별하여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회개와 구원에 대해서도 죄와 사망의 문제에 대해서도 접촉점과 상황화를 고민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힌두교도들에게 이 문제를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연결성을 연구해서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했을 것이다.
바울의 신학적 고찰로 인한 여러 힌두교적 접근 방식 중 예상 할 수 있는 것은 양자교리의 탁월함과 포괄성이다. 즉 구원론과 관련해서 접근했을 경우를 생각했으며 그 중 양자됨을 가지고 힌두교도들에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양자교리는 중생교리와 칭의교리와는 다르다. 법적인 선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얻은 선물이며 구원과 구속사를 포함시킬 수 있다. 그리고 힌두교의 여러 약점들 중 뿌리 깊은 개인 구원과 그에 따른 노력과 헌신은 이 양자교리가 접촉점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른 상황화적 연결점은 성령론이다. 지금도 성령론이 완벽하게 정립되지 않았음을 알지만, 그것은 논리적 증명 이외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인 정립도 불완전하다고 볼 수 있다. 어쨌거나 바울이 성령론을 분명히 정리하여 힌두교도들에게 가르친다면 이신칭의나 교회론도 이어질 수 있으며, 선교적인 당위성까지 정리하게 될 것이다.
자기의 의로는 스스로의 의만 인정될 뿐 그 선명성과 충족성, 그리고 초월성은 분명 없다. 즉 한계로 인해 그렇게 여기는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의를 은혜로 얻게 되고 옷을 바꿔 입듯 입혀진다면, 영구성과 완전성, 그리고 실체성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힌두교에 대한 양자교리와 성령론의 정리와 접근은 놀라운 하나님을 드러내주는 것이기 때문이며 인간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다.
Ⅴ. 결 론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 선교를 이끄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울의 사역도 성령의 사역에 기초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다 저렇다 생각할 수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넘어서거나 물러서서 눈높이를 맞추면 안 된다. 그러므로 조심스럽다.
아무튼 아테네 설교와 비교하여 연구하지만 바울의 다른 설교들과 성경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많은 설교들이 궁금하기만 하다. 하지만 천국에서나 알 수 있을까.
바울의 힌두교에 대한 설교는 많은 연구와 신학적 베이스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짧은 지식으로 잣대를 될려니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하지만 소신껏 생각해보고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쓰게 되었다.
그럼, 바울이 힌두교에 대한 설교를 정리해 본다면,
첫째, 주위를 집중시키거나 관심을 유도하는 접촉점을 찾는다.
둘째, 힌두교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궁금점이나 호기심 유발을 일으키는 관점을 소개한다.
셋째, 잘못된 종교적 측면을 건드리면서 하나님을 소개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힌두교 신들과 다른 완전성, 충족성, 독립성, 전지전능함, 그리고 편재성과 단일성을 말했을 것이다.
넷째, 기독론을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해서, 그리고 겸손의 왕이며, 의로운 왕이며, 사랑의 왕이심을 드러내고 구속주로서 다시 재림하실 때는 심판의 주이심도 말했을 것이다.
다섯째, 죄에 대한 이해와 회개를 선포하고, 양자됨의 은혜와 윤회의 사슬이 없음을 선포 한다. 죄를 깨닫고 자복하며 참 회개를 한다면, 믿음으로 인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짐을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믿음으로 우리에게 입혀지 며, 믿는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죽음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됨을 가 르친다.
아테네 설교를 바탕으로 힌두교 선교설교를 비교 적용해보았다. 바울의 설교는 기독론과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죄와 사망, 회개의 문제, 여기에 의로움에 대한 문제까지가 설교의 중심 주제였다. 그리고 아테네 설교에서도 주로 이러한 부분들이 다루어 졌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힌두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연구 적용해 보았다. 미흡한 점이 많고 연구 보완할 점이 많기에 더 많은 고찰이 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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