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학창시절을 뒤돌아보며

  80년 후반 우리 문학서클 애들은 너도나도 데모에 가담하고 투사라는 칭호를 받으려 했었다...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형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로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었다...매판자본론, 마르크스주의, 주체사상, 일제의 잔재와 정치, 경제의 결탁 등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혈기 가득한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을 최고의 시로 알았고, 진군가, 5월의 노래, 항쟁가, 노동가 등등 지금도 가끔 흥얼 거리게 되는 노래들을 늘 들었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면서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나는 곧 잘 상을 타왔다...학교에서도 몇몇 미술 선생님들이 예고로 진학해서 그림을 계속 그리라는 권유도 들었었다...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그 꿈은 접게 되었고 사립입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미술에 대한 못다한 꿈을 글로 풀어보고자 시문학 동아리에 가입했는데...조건이 까다로왔다...시험을 두 번이나 봐서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자작시를 써서 먼저 통과되면, 짧은 수필을 써서 또 시험을 치렀다...6명의 친구들이 뽑혀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러 갔다...우리를 인솔한 선배는 고2 인데도 엄청 나이들어 보이는 말투와 행동을 하고 있었다...한 허름한 중국식당에 들어가니 이미 큰 방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군복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고 머리가 엄청 긴 장발의 사람들도 있었다...저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사람들이었다...우리는 들어가는 순간 기가 죽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자연스럽게 무릅꿇고 앉았다...그 사람들은 우리 동아리의 선배들이라고 했고 다들 대학생이었다...군대 안 갈려고 도망다닌다고 말하는 사람은 야상이라는 군대 옷을 입고 있었다...그리고 머리 길고 침침해 보이는 사람은 투사라고 불리고 있었다...우리는 원래 선배들은 다 이런 사람들이고 시문학 동아리는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구나 라고 생각했다...이윽고 간단한 소개와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늘 그렇듯이 선배들은 누나 있냐? 애인있냐? 이런 것을 물어보면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식사를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술을 시키면서 우리는 긴장했다...아직 중학교 졸업장 받아 잉크도 안 말랐는데 술이라니? 하지만 왠지 이런 분위기에선 거절할 수 없었다...선배들이 따라주는 술을 냉큼냉큼 받아 마시다 우리도 취해 버렸다...분위기는 완전 풀어지고 긴장감은 아예 없을 때, 한 선배가 일어나 처음 듣는 노래를 불렀다...노동가라고 했다...얼떨결에 따라 불렀다...그러고 나서 한 동안 처음 듣는 노래들만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선배들은 노래를 불러댔다...왠지 슬프면서도 울분을 토하게 만드는 노래였다...선배들은 그때부터 시국선언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이 나라를 사랑하냐고 물어보면서 제대로 알고 사랑하냐고 묻는 것이었다...우리가 그런 질문에 대해 뭘 알겠는가 싶어 쳐다보니...기다렸다는 듯이 선배들은 간단한 일제의 잔재들을 이야기 하면서 주체사상까지 아우러서 이야기했다...그때 우리들은 충격을 먹었다...첫째로 이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된다 였고, 둘째로 나도 뛰어들자 였다, 세번째로 더 알아야 겠다였다...

 그 날 이후로 우리 동기들은 자주 선배들과 만남을 가졌다...선배들이 읽으라고 한 책들을 건네 받으면 일주일 새에 다 읽고 모여서 토론했다...책들은 자본론, 마르크수주의에서 몇 달 뒤에는 주체사상에 관련된 책까지 읽고 토론하기에 이르렀다...그 당시 나는 그것이 지식인의 모습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 지식이라고 여겼다...이러한 것에 대해 선배들은 침을 튀기면서 흥분하곤 했다...그리고 데모할 때의 경험담과 이야기들을 자랑스럽게 풀어놓았다...점점 우리 동기들도 선배를 따라 데모에 가담도 하고 선배들이 만드는 전단지나 현수막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글 잘 쓰는 동기들은 글쓰는데 참여했고 힘쓰는 동기는 직접 가담하기까지 이르렀다...나는 왠지 중립의 위치를 고수하고 싶었다...그러다 보니 동기들과 마찰이 있었다...적극적이지 못한 내 모습이 못 마땅했던 것 같다...하지만 책들을 읽으면서 들은 생각과 결론은 이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하지만 참고는 하면서 살아야 겠다였다...그리고 순진한 고등학생을 세뇌해서 미리 준비시키는 주사파의 철두철미한 계회과 전술에는 무서움을 느끼게 되었다...과연 이러한 혁명전선은 정당한가? 피를 흘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않하는가? 원론적으로 주사파도 지금의 정치인들도 다 똑같지 않은가? 이들의 계획은 좀더 치밀하고 미래지향적이며 핵심을 파고드는 전략이지만, 과연 이 전략을 짜고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정치인들과 무엇이 다르냐란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역사가 말해주듯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싸움은 그것을 정의내리고 대치 세력과 구분두는 그 자체에서부터 이미 동떨어진 개념이라고 파악했다...

 

 월맹이 월남을 패망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이간질로 인한 내부 분열이었다...월맹은 월남에 수많은 사람들을 보냈고 그들을 이용해 내부 분열을 일으켰다...그리고 월남의 수많은 지식인과 정치인, 교육인, 공무원, 심지어 군인까지 포섭했다...불만이 있고 혈기가 넘치는 사람들이 주 목표였다...그리고 이들이 내부 분열을 주도했다...미군이 철수한 후, 남겨진 미군의 무기만이라고 잘 활용했다면 쳐들어 오는 월맹을 잘 이길 수 있었지만, 내분과 분열이 이것을 가로막았고 점조직과 같은 월남군대는 스스로 무너졌다...그리고 이간질하고 내분을 일으킨 수많은 월맹 충성파는 어느 순간 처형당해 버렸다...그들 중에는 순수한 열정으로 가담하고 이 나라의 문제는 오직 이것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충성한 자도 있었다...하지만 월맹측은 아니었다...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던 사람의 충성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리고 한 번 배신하고 분열을 획책한 자는 또다시 불만이 있을 때 다시 일으킨다는 것이었다...그래서 역사가 보여주듯 월맹은 내려오자마자 월맹에 충성했던 내부 조력자들을 모두 숙청해 버렸다...

 월맹이 월남을 무너뜨릴 인재로 여기고 선택하는 사람들 기준은 첫째, 불만이 있는 사람, 둘째, 열정이 있는 사람, 셋째, 무식하지 않은 사람, 넷째, 소외계층의 사람이었다. 이런 범위에 드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은 철저히 교육했고 일대일 관계로 세뇌시키듯 전수했다...그리고 충직하고 훌륭한 혁명가로 키웠다...하지만 결국엔 숙청대상 일호였던 것이다...본인들은 이제 참 세상이 왔고 참 자유가 왔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것은 죽음이었다...이것도 헛되지 않은 죽음이라고 미화시키지만, 왜 헛되지 않다는 논리를 어떻게 펼 수 있는 것인가?...한 쪽만 듣는 귀가 되었을 때는 그것도 정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하지만 기준이 달라지면, 그 정당성은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어느 집단이든 나라든지 간에 불만은 늘 있게 마련이다...인간 스스로 불편함과 소외감과 불이익 당함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더욱이 실행하고 생각하는 기준이 나에게 있다면, 내가 어렵게 된다든지 힘들게 된다면 참지 않고 주먹을 쥐게 되어 있는 것이다...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하지만 혁명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포함하기에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늘 주도세력이 있다면 소외된 세력이 있게 됨을 본다...그리고 안주하고 지키려는 세력이 있다면 바꾸고 싶어하고 뭔가의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도 늘 존재한다...중요한 것은 균형이다...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에 무게를 싣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그리고 소수의 사람들도 무시당하거나 쇠외당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여기에는 더 깊은 논의와 쟁점이 있지만 거기까지 가고 싶지 않다...

 

내 블로그에 그냥 푸념섞인 말을 하고 있는 이유는 왠지 기억에서 제거해 버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 안에서는 충성파의 모습이 많이 변해 있음을 볼 수 있다...불과 이십여년 전과 지금은 너무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북한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그리고 북한은 90년대 남한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자연재해을 계속 맞았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안에 있던 수많은 충성파들도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어느정도 자생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충성파들 스스로의 색깔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북한에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까지 간 사람들도 있었고 시나브로 우리나라에 존속된 사람들도 많아진 것이다...이러한 모든 것을 책임지고 그 책임자를 총살도 시켰다...그리고 새로운 인물을 다시 뽑고 분석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북한의 의도대로 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소익의 성과는 있었지만 전체를 움직일 그리고 점점 확장시키고 내부 분열까지 갈 수 있는 영향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그래서 계속적으로 원인 분석을 하면서,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에 가로막히며 무엇을 제거해야 하는지 알아내고 결론을 냈다...결론은 우리나라가 가진 독특한 성장배경과 기독교였다...

  성장배경이 독특한 우리나라는 쉽게 배타적이 되거나 쉽게 뭉치게 되는 특성이 있다...문화를 기발하게 변화시키고 운영하며 더욱 세련되게 만드는 비상한 머리도 있었다...스스로의 의식도 높고 못살다 잘살게 되었기 때문에 선진국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 집단인 것이다...그리고 북한과의 괴리감은 더욱 큰 격차를 벌여놓게 되었다...경제적인 성장도 정치적인 변화도 큰 문제였다...아무튼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은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분열이었다...충성파들은 매스미디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어떻하든 성적 타락을 조장하고 비리와 정치적 어두운 그림자까지 파고 들기 시작했다...그리고 여론을 몰아가기 시작한 것이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한에는 이러한 것에 대한 대처도 준비도 거의 없는 상황인데, 그냥 모든 요소들이 시나브로 잠식되는 것이었다...이것을 이상하게 여긴 북한은 이러한 이유를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길 교회의 영향으로 판단했다...북한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기독교의 영향은 이 나라를 움직이고 융화시키고 있었다는 것이다...분열과 불만을 잠재우는 큰 역할을 교회가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기독교를 끌어내리기 시작했다...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조장하고 퍼뜨렸다...

 

 이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역사를 알고 머리 좋은 충성파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지금 북한이 맞이한 변수들이 너무 크다는 것을 말이다...후계 문제에 있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북한은 큰 소용돌이 속에 놓여있다...젊은 후계자를 보필하고 충성해줄 친위대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그리고 북한도 어쩔수 없는 유교의 영향권을 갖고 있기에, 나이 문제는 정말 골치아픈 문제다...그래서 선택한 것이 종교집단적인 모습을 더욱 곤고히 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이용할 때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정치적 변혁까지 생각한 노동운동도 이젠 한 문화가 되었다...충성파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학생운동도 이젠 사그라지고 불씨만 있을 뿐이다...교원비리가 주 타켓이 되었을 뿐이다...이런 변화는 순간의 끈을 놓고 북한 내 현실에 매달렸던 시기에 급박하게 이뤄진 것이다...그리고 충성파들의 변화도 큰 몫을 했다...순수계열과 혼합계열의 분열도 있었고, 자기 색깔이 더욱 진해지면서 오는 독립성도 강해졌기 때문이다...위기인 것 같은데 변화의 한 축이였고 변혁인것 같은데 완성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변수가 복잡하게 발생한 것이다...

 그저 시국의 흐름을 뒷짐지고 바라보고 있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큰 위기감도 큰 변화도 예감할 수 없음을 느낀다...단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아마도 나는 방관자라는 닉네임을 받을 사람이겠지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역사적인 흐름의 큰 소용돌이 속에 놓여있는 것에 대해 깊은 관심도 있기 때문이다...어디까지 갈 것인지, 어떻게 될 것인지 예견 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끄적거려 본다...그래서 인간의 역사 흐름을 잘 살펴보면 재미가 많음을 늘 깨닫는다...

 

 나 개인 신앙의 잣대를 만들고 본다면...흐름이라고 본다...거역할 수 없는 흐름인 것이다...그리고 큰 물줄기 속에서 나는 조그마한 돌맹이지만...분명한 것은 그 흐름에 나 본인도 속해 있다는 것이다...변혁의 시기를 겪으면서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는 이 나라는 끊임없는 변혁과 개혁, 그리고 보수와 안정이 뒤섞여 있음을 본다...인간은 주어진 삶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노력하며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강요보다는 협력을 독선보다는 융합을 하지만 고수할 것은 끝까지 지키는 용기도 있어야 겠다고 생각해본다...우리나라는 그런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고 아직 미완성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호 사건에서   (0) 2014.04.29
장자연 리스트에 관하여  (0) 2011.03.11
금양98호와 우리  (0) 2010.04.26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의 자살에 대하여  (0) 2009.12.23
장자연씨 파일은 이제 끝났는가.  (0) 2009.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