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선교학 : 세기의 전환기의 미래에 대한 응시
저자 : 사무엘 에스크바
요 약 : 유 성 두
선교학을 선교행동의 이해를 위한 교차학문적 접근이며, 그것은 성경적 과학, 신학, 역사,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선교적인 사실들을 조망한다. 그리고 선교학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프락시스에 관한 비판적 성찰이다.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복음주의 선교학자들은 복음주의 선교활동의 엄청난 경험에 대해 반성하기 위한 협력에 착수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조명과 신학적 진리, 그리고 새로운 선교적 도전들 가운데, 선교 행동주의에 대한 정직한 평가와 선교적 복종에 대한 새로운 모델들을 계획하려는 노력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복음주의 선교학적 반성과 재고는 그 역량을 결집했고, 1974년에 열린 로잔회의는 기독교 선교를 촉진하는 재결집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선교에 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로잔회의는 선교의 개요와 의제를 제시하게 되었다.
1. 복음주의 선교학 발전의 배경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은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의 탄생, 미국 복음주의 선교적 역량의 성장, WCC의 발전과 IMC와의 통합, 제2차 바티칸공의회, 오순절 운동의 지속적 성장과 그에 대한 인식 같은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로잔운동이 선교학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언급한다.
로잔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세 가지 활발한 복음주의 운동들에 앞서 일어났다. 첫째, 1949년 로스엔젤레스에서 빌리 그래함의 주도로 공식적인 주목을 받았던 대중전도의 부활을 들 수 있다. 둘재, 유럽, 특히 영국에서의 복음주의 대학들의 갱신에 뒤따른 성경연구와 신학적 반성에 있어서 진지한 복음주의 학문의 갱신이 있었다. 셋째, 강력한 복음주의 교회들과 운동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유럽과 북미에 불어닥친 개신교 선교사역 활동과 열풍의 흐름과 연관되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세가지 운동들은 WEA와 로잔 같은 연합체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통일과 협력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방법을 찾는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단체, 그리고 교단적 갱신단체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좋은 예이다. 또한 그들의 다양성은 때때로 그 단체들 모두를 포함할 수 없는 그러한 연합운동들 안에 나타나는 긴장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을 이해하는 핵심요소는 복음주의적 삶과 선교의 특징인 자발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운동들은 크리스찬 투데이 창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 1966년 베를린 회의에서 수렴되었다. 이 베를린회의는 칼 헨리가 주도했는데, 그는 새로운 세대의 복음주의 학자들과 접촉하고 근본주의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원했던 복음주의를 위한 신학적 의제를 명확하게 설명한 신학자며 저널리스트다. 그리고 이 베를린회의에서 중요한 사실은 복음주의자들이 오순절 운동의 활력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용했다는 것에 있다. 베를린회의에 뒤따른 선교회의들은 복음적 진리를 확증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에 대한 냉정한 고찰을 위한 수렴의 근거와 기반이 되었다.
베를린회의에 이어진 싱가포르(1968), 미네아폴리스(1969),보고타(1971), 그리고 마드라스(1974)에서 열린 지역회의들은 1974년에 로잔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로잔은 유럽과 북미 복음주의자들의 선교학적, 신학적 독백이 아니라, 전 세계의 기대를 넘어서 성장해 온 친밀한 글로벌 대화가 된 것이다. 이 대화는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명령에 대해 복종하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대화였다.
1974년 로잔회의에서 제기된 로잔언약의 내용뿐 아니라 그 과정의 진행을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네 가지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선교적 실천의 새로운 형태를 채택하는 것과 새 신학적 공식에 대한 요구의 응답에 대해 강력한 도전을 표현하고 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선포에 관한 복음주의적 강조점을 유지하는 한편, 복음선포가 요구하는 선교사의 현존과 제자화, 그리고 교회의 협력에 대한 요청을 묘사하는 통전적 선교개념에 대한 헌신이었다. 둘째는 오로지 로잔회의에서 공유된 선교적 열정과 로잔언약 그 자체에서 도달된 기본적 신학적 합의에 근거하여 교회와 초교파 선교단체, 주요 교단과 복음주의 교단, 오순절 교단과 개혁교단 간의 선교적 과제를 성취하기 위한 협력에의 요청이었다. 셋째 요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제국주의 시대에서 선교신학적 과제는 글로벌 차원을 띤다는 인식이었다. 넷째는 선교의 상황을 진지하게 숙고하고자 하는 헌신이었다.
2. 로잔 1차대회에서 마닐라 로잔 2차대회까지
로잔회의 이후 복음주의 선교활동은 보다 가시적으로 숙고와 명확한 설명과정을 동반했다. 많은 모임들이 이루어졌고 협의회들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로잔운동에 대한 영향으로 많은 문제들 또한 동반했다.
로잔 1차대회와 로잔위원회의 후원 아래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로잔Ⅱ 사이에는 괜찮을 정도로 선교활동과 선교에 대한 숙고가 로잔운동에 의해 고무되었고 조장되었으며 방향 지어졌다. 그리고 촉진되어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로잔 2차대회가 다가옴에 따라 여러 선교사들과 신학자들, 특히 제3세계의 선교사, 신학자들은 로잔운동이 취하려는 방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들은 1차 로잔회의에서 얻은 영역들에서 더욱 협소하고 안전한 위치로 후퇴하려는 분위기를 간파한 것이다. 즉, 그들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슈 또는 발표자들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나타나는 것들과 북미에서 고안된 선교 상품을 팔기 위해 로잔 2차대회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한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 차원에서 로잔1차대회에 이어 전 세계적으로 선교적 실천의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다고 본다.
3. 세 가지 선교학적 경향
1) 후기 제국주의 선교학
후기 제국주의 선교학은 영국과 유럽의 복음주의자들에게서 나온 선교학이며, 확실히 후기 제국주의적 자세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선교학이 서구가 유지하려고 노력해 온 제국주의적 지배가 지나갔으며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본다. 즉 유럽교회의 몰락과 유럽사회의 가치와 태도 형성에 대한 유럽교회들의 영향력 상실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형태의 제3세계 기독교의 부상이다. 여기서 선교의 실천과 이론은 선교를 위한 새로운 준거 틀의 부분으로서 이러한 사실들을 다루어야 한다. 즉 선교학적 리서치와 숙고는 적어도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방향은 현대 선교활동을 정정하고 조명하기 위한 갱신된 성경적 형태에 대한 연구이다. 이 탐구의 현장은 지상 대위임령에 대한 존 스토트의 성경연구와 구원, 회심, 복음전도, 대화, 선교와 같은 핵심용어에 대한 정의를 통하여 개척되었다. 그러면 후기 제국주의 선교학적 접근에 의해 취해진 두 번째 방향은 서구 제국주의 사업의 모호성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다루는 것과 선교적 복종을 서구 제국주의와 분리하려는 노력으로서, 선교활동의 역사를 기술하고 해석하는 비판적 작업이었다. 세 번째 방향은 북대서양에 위치한 교회들이 제3세계 교회들과 창조적인 형태의 동반자 협력에 들어가는 글로벌 과제로서 선교의 미래에 대한 가시화이다.
이 선교학의 특징은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선교열정이 역사의 교훈들을 용기있게 받아들이며, 선교적 봉사의 장에서 성경적 학문을 최상의 도구로 사용하여 하나님 말씀을 탐구하는 성향과 일치된다는 것이다.
2) 관리전 선교학
AD 2000 and Beyond 운동과 같은 교회성장 학파 내지는 운동들과 연관된,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있는 여러 복음주의 기관들 가운데 특수하게 발전된 선교학에서 비롯되어진 특이할 만한 유의점은 기독교 선교를 관리적인 사업으로 축소하려는 노력이다. 이 선교학의 모든 특색은 공공연한 양적 의도의 틀 안에서 인식될 때 이해 가능한 것이 된다.
현대 미국에서 나온 전형적인 학파로서 양적 접근은 잘 정의된 지배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방향이다. 관리성의 성취 방법은 정확하게 이해 가능한 묘사로 실재를 축소하는 것이며, 따라서 양적 형태로 묘사된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서 선교적 행동을 객관화하거나 투영하는 것이다. 복음적 과제가 상업적 원리에 따라 실행될 수 있는 과정으로 축소되는 것과 같이, 선교적 행동은 여러 목적들에 따른 관리 과정 가운데 수반되는 논리적 단계들로 병형되어 직선적인 과제로 축소된다.
관리적 선교학의 통계적 분석은 선교효과를 측정하는 데 있어서 부정확성을 줄이고, 선교의 효과를 정의하고 평가하는 정통적 방법의 부정확성을 줄이는 한 방법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러한 평가적 방법론은 복음의 메시지를 아직 듣지 못했거나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미완성의 복음전도 과업에 관한 주장과 결부되어 선교의 개념을 교회의 수적 성장으로서 협소하게 정의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아무튼 관리적 선교학이 이 시대의 불필요한 정신을 양산했기 때문에 심각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관리적 선교학의 기원을 반영하는 두 번째 중요한 유의점은 신학적 문제들을 덜 강조하고, 적합한 내용이 있는 것을 당연시하며, 그 결과로 방법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서 과제에 대해 실용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셋째, 관리적 선교학에 관한 미국의 기능주의적 사회과학의 강한 영향은 우리가 복음의 변혁적 역동성을 실행하게 될 때 중대한 결핍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적 선교학에 대한 옹오자들의 주장이나 실질적 선교동기는 의구심을 갖게 했으며 여러 가지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3) 주변에서 나온 비판적 선교학
새로운 선교학이 옛 선교지역에서 발전되기 시작했으며 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로잔 1차대회는 상황적이며 현장과 연관된 그러한 새로운 숙고를 경청하고자 하는 개방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오늘날 아프리카와 대부분의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교회들의 엄청난 역동성뿐 아니라 많은 역사적 실례들은 코스타스의 “주변으로부터의 상황적 선교모델”이라는 주장을 입증하고 있으며, 선교의 미래를 위한 지침들을 정해주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북미나 유럽의 관리적 계획들을 채택하는 교회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향과 민족 정신을 표현하는 그들 자신의 선교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것에서 나왔다.
그리고 제3세계 선교학자들은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선교사역을 방어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를 위한 선교전략의 공식화를 위한 평가적 질문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4. 삼위일체 선교학
1) 성경 전반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상의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규범으로 본다. 그러므로 성경은 선교의 사고와 행위에 있어서 우리의 방향을 위한 규범이다. 로잔언야고가 다른 기독교 대담자들과의 대화 가운데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의 실행 그룹들에 의해 작성된 문서들은 이러한 성경적 확신을 반영한다.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내어주신 사랑과 그의 영원한 목적에서 나온다.” “예수를 통한 메시아 왕국의 도래는 기쁜 소식의 선포와 회개와 믿음의 권고,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하는 모임을 요청한다.” 는 확신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복음주의 선교학의 성경으로의 회귀, 특히 신약성경 형태로의 회귀는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교회에 의해 어떻게 선교가 실행되어 왔는가를 지속적으로 재발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에 대한 이해는 역사적 발전에 대한 적절한 배려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2) 기독론적 중심의 모델
맥그라스는 복음주의의 자세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최근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이것을 복음주의자들이 확고히 하는 성경에 대한 높은 견해와 연관 짓는다. “기독론과 성경적 권위는 불가결하게 연관된다. 그 연관성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구원의 지식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오직 성경뿐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그리고 시대적으로 이 부분은 많은 논의와 정의가 있었다. 그리고 중생과 회심에 대한 정의도 계속 시도되었다. 그리고 선교는 문화변화적인 행동과 연관되므로 복음의 수용자들이 이국적인 문화 형태들에 대한 강요로 나타나는 복음전도와 회심의 형태들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복음주의적 자세를 확고히 주장하는 감리교 신학자인 보니노는 최근 라틴 아메리카 복음주의자들에게 타종교에 대한 이슈를 진지하게 다루라고 도전하는 책을 저술했다. 그는 삼위일체 기독론적인 초점이 우리의 안내자로서 봉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신약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신’ 말씀과 분리하지 말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경험들 안에서 그 말씀과 성령의 현존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이것은 “이교주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는’ 그 분에 대한 고백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이 마리아의 아들의 육신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분리해 내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참된 말씀과 언약의 하나님의 영의 표지들을 발견하는 장소는 바로 그 곳이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이라는 척도에 의해 우리는 인간 역사 안에서 그 하나님의 모든 현존을 측정한다.”
3) 성령의 능력
선교와 연관성에 있어서 성령의 주도권에 대한 이해는 여러 복음주의 학자들의 기여에 의해 그 영역을 풍성하게 넓혀갔다. 그들의 작업은 복음주의의 선교 실천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위한 확고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성령에 의해 영감을 받고 능력을 받은 운동들의 특별한 기여에 대한 인식은 다른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브라질 선교학자인 발디어 스토이어나젤의 말을 인용하면, “성령론적 언어 안에서 이해되어지는 선교는 두 단계와 하나의 행동을 의미한다. 첫째로 그것은 성령의 바람과 그 방향을 감지한다. 그 다음은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는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에 대한 분별이 개방적인 태도와 감수성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새로운 것과 특별한 것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바람의 배후에는 성령의 능력과 활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 인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 실천에서 이러한 형태를 발견한다.
복음주의 신학은 선교학적 추진력과 계시된 진리에 대한 충실성 양자를 유지하려고 애써왔다. 우리의 강조점은 세상적인 계층적 제도에 의해 표현되어지는 연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연속성에 있는 것이다. 모든 선교의 개척자들에게 있어서나 모든 상황화의 노력에 있어서 복음주의 선교학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속적인 충실성을 강조해 왔다.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20세기 중반에 제시된 에밀 부르너의 지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원초적인 교리의 유지인 말씀의 연속성에 대한 질문 뿐 아니라, 삶의 연속성이다. 그것은 성령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이다. 예수의 친교는 성령의 영감 가운데 살아있다. 그것은 그 생명의 비밀이며, 그 성찬의 비밀이고 그 능력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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