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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

힌두교를 국교로 삼으려는 도전에 직면한 인도 교회와 선교 - 죠셉 드수자

2008. 4. 24 

 

 

 힌두교를 국교로 삼으려는 도전에 직면한 인도 교회와 선교

 

 

죠셉 드수자

 

 

 

담당교수 : 안 점 식 교수님.

발 표 자 : 유 성 두 강도사 

 

 

 

 오늘날의 인도는 세계화, 다양한 종교들, 전통, 종족, 정치문제 등이 전면에 나서고 또 서로 갈등하고 있는 소란스러운 나라이다. 인도 교회와 선교사역도 이런 인도인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당황하고 있다.

  이제 인도의 현실을 보여 주며 교회와 선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네 가지 이미지를 살펴보겠다.

 

1. 새로운 중산계층의 성장

 

 인도는 완전히 변하고 있으며 변해있다. 자본주의의 슈퍼파워와 타협한 것이다. 경제의 힘과 근대세계의 신인 물질주의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영성과 현자들로 유명한 나라가 최근 몇 십 년 간 급변하고 있다.

 클린턴 미대통령이 인도에 온 것도 인도의 중상층과 경제력을 인정해서 온 것이며, 인도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정보기술산업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인도의 경쟁력은 영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과 중상층의 성장에 있다. 그리고 영어의 사용은 인도에 있는 글로벌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선교적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있어 장점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힌두교와 다른 종교들의 상위 카스트들이 여전히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상위 카스트들은 여전히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우선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치적인 자유와 경제적인 해방의 첫 번째 수혜자들인 셈이다. 상위 카스트들은 세계화 이후 더 강한 권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풍부한 교육과 미디어의 사용으로 그들은 더욱 부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권력을 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힘으로 힌두트바 운동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는 인도 사회를 하나로 겨우 묶어 주었던 종교적 가치와 전통들을 잠식하고 있다. 가족구조가 공격당하고 있고 성행위, 마약 등이 성행하고 있다. 중상층의 이혼률도 높아지고 있고 소외와 외로움, 관계단절 등이 인도 도시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되었다. 여기에 폭력과 강간 같은 범죄율도 전국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1) 금송아지냐 예수냐?

 중산층과 상류층에서의 선교는 중단되었다. 이해와 관계적 접근이 부족하고 복잡한 현실에서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선교회의 인도인 지도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중산층들과 연관된 주제들을 주의 깊게 다루어야 한다.

(1) 인도에서 이데올로기요 삶의 양식이 되어 버린 물질주의를 새로운 방법과 관점에서 비판해야 한다.

(2) 복음 메시지는 물질주의가 양산해 낸 소외와 외로움, 깨어진 관계, 그리고 사회해체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복음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회복과 하나님께로의 귀환을 전하면서 참 인간은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닌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려야 한다.

(3) 과거에 물질주의와 현대성에 대항하는 기독교 문화에 대한 논의들과 저술들이 많았지만, 서구에서조차 이런 문화가 실존하지는 못했다. 물질주의가 지향하는 성공과 번영을 성경과 균형잡힌 접근으로 교회는 규명하고 가르쳐야 한다.

(4) 북미나 다른 외국에 살고 있는 인도 그리스도인들 즉, 디아스포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2. 가난한 인도의 대다수들

 

 인도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두 번째 이미지는 질병과 가난, 고통, 그리고 환경오염 등이다. 7억의 사람들이 깨끗한 음용수를 찾아 헤매고 있을 때, 3억의 사람들은 콜라를 마시고 있다. 이것이 인도의 빈곤이다. 세계화와 새로운 중산층의 성장 가운데서도 절대적 빈곤은 여전히 자라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 대부분은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이슬람들도 가난하다. 또한 문맹자들이 가난하고 시골지역 사람들도 가난하다.

 

1) 폭력적 혁명인가 아니면 예수의 사랑인가?

(1) 테레사 수녀의 삶은 이런 현실의 인도에서 뛰어난 모델이 된다. 즉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의 절규는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반응을 보여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인도 교회와 선교회는 성자의 삶을 살 수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을 배출해야 한다.

(2) 인도의 선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빈자들의 삶을 섬기는 데 앞장서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희생적 봉사를 가능케 할 수 있다. 예수의 사랑과 메시지로 힌두트바의 비난을 이겨야 한다.

(3) 인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인, 가난하고 문맹인 사람들이 영적 문제와 양심 문제들을 결정할 능력이 없다라는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성경과 예수님의 사랑에서 찾지 않고 근본적인 인간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말로 정당성을 말한다. 이것은 극히 인본주의적 의견이라 염려가 된다.

(4) 인도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개인적인 죄와 함께 사회적인 악도 다루어야 한다. 인도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양심은 더 일깨워져야 한다. 교회는 개인의 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3. 달리트바후잔 카스트의 해방

 

 달라트바후잔이란 인구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핍박받는 카스트들을 뜻한다. 달리트바후잔들의 사회적, 정치적 활동 때문에 오늘날 다양한 종교들이 민주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들이 만약 힌두트바의 교리를 받아들였다면 인도는 종교분쟁으로 인한 더 큰 난관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리고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는 일부 상류층 카스트 사람들도 달리트바후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달리트바후잔들은 이미 타밀 나두와 비하르 등 다른 지역에서 정치적, 사회적 지도력의 위치에 올랐고 인도 전체를 장악하는 것도 시간 문제이다.

 인도 사회는 어떻게 보면 분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스트 제도로 인해 인종 차별주의를 가져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인종차별은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한 이후로, 인간에게 범한 두 번째 오래 된 죄이다.

 

1) 예수의 실패인가? 인도 그리스도인들의 실패인가?

  문제는 식민지 시대 때의 선교를 통해 형성된 기독교가 카스트의 정체성을 품고 있다는 데 있다. 즉 남인도쪽은 카스트에 대해 수용적 입장이였다. 그럼으로 인도 교회들은 브라만화되었다. 이런 태도가 인도의 사회악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상류층과 달리트바후잔 공동체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달리트바후잔 내의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들끼리 카스트에 따라 편견을 가지고 있다. 통합적인 모델이 필요할 때 인도 교회는 보여 줄 모델이 거의 없다. 선교단체들도 화해하고 화목된 공동체 모델들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은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단편화되고 분열하고 있는 사회에 대안들을 제공해 주는 복음에 대한 모욕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인도 교회는 달리트바후잔 공동체의 핵심을 뚫고 들어가고 있다. 교회 내에 카스트 제도가 만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낮은 카스트들에게 많은 사회복지 사역을 해 왔기 때문이다. 즉 교육에 힘을 쓴 것이다. 그러므로 달리트바후잔들은 기독교를 자연스러운 동맹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도 선교단체들은 유입된 사상과 사역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자신들의 상황 안에서 생각하고 장기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 중생과 화목 그리고 구속이라는 복음의 근본적인 진리에 계속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나누어주어야 할 영광스러운 복음을 소유하고 있다. 그 왕국 복음은 단순히 구원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①폭력에의 종식 ②완벽한 사회정의 ③인간 삶에서 사회적 낭비의 교정 ④인간생활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작되고 ⑤모든 합법적인 정당한 대가가 약속된 복음이다. 우리는 이러한 총체적인 복음을 담대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증거해야 한다. 복음은 구원, 하나님과 관계와 회복, 그리고 삶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현실 세계의 삶과 같은 무게로 두어서는 안 된다. 상황화를 현실 주관에만 포커스를 잡아 염려된다.

 

4. 복음선포와 변호로서의 선교

 

  종교적 다원주의라는 울타리 위에 서 있는 인도 그리스도인들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었기 때문에, 그 분 안에서만 가능한 구원을 분명히 붙잡지 못할 때 교회는 어느 나라에서도 힘을 잃고 만다.

  1999년 12월 인도에 온 교황의 선포는 많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미디어를 통해 인도 전역에 역설한 것이다. 그가 돌아간 이후 인도 그리스도인들과 그 기관은 더 많은 공격과 비난을 받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양심에 따라 행하면 법을 어기게되는 법 제정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인도 사람들은 이러한 반 기독교적 행동과 거짓에 치우치지 않았다.

  인도 교회는 기독교 역사와 싸워야 한다는 것 외에, 다양한 종교와 그에 따른 갈등, 그리고 인도의 정보기술로 인한 국경의 사라진 것 등 초대교회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미국에서 지혜롭지 못한 성명이나 보고서가 나오면 하루 만에 인도 그리스도인들은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1) 예수 안에서의 중생이냐 기독교로의 개종이냐?

 인도 교회는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복음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변호도 해야 한다. 즉 교회는 주요 주제들과 대항해야 하며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

(1) 역사를 통해 교회가 저질러 온 과오와 죄들, 즉 십자가 운동, 남미에서의 문화말살, 식민주의시대 때의 정교연합, 유럽과 미국에서의 신앙의 쇠퇴, 그리고 반유대주의 등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공개적인 고백과 함께 나라와 민족들, 그리고 문화와 종교를 향한 태도가 실제적으로 변해야 한다.

(2) 교회는 카스트 제도를 회개해야 한다. 교회는 현실 문제는 외면하고 교회 내적 문제만 신경썼었다. 그 결과 인도의 현 상황을 인정하게 되고 인도 사회의 핵심에 관여하지 않았다. 회개한다면 실제적으로 달리트바후잔들에게 교회 안의 정당한 지도자 자리를 주어 교회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럴때 교회는 인도 생활에 예언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게 될 것이다.

(3)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인도의 방대하고 고대로부터 내려온 철학 사상을 다시 배워야 한다.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헬라 철학의 시스템에 사로잡혀 있는 기독교는 종식되어야 한다. 인도 사상에는 성령의 인도와 조명아래서 이해하면 성경의 진리를 좀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문화우월주의적 사고인가 아니면 상황화에 대한 고심에서 나온 판단인가? 철학의 좋은 것과 나쁜 것, 맞는 것과 틀린 것의 판단 기준은 쉽게 내려질 수 없는 것인데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염려된다.

(4) 힌두트바 세력은 상황화를 그리스도인들이 순진한 힌두교도들을 속여서 개종시키는 수단이라고 공격해 오고 있기 때문에 이 영역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먼저 힌두교 상징물의 사용을 자제해야 하고, 다음으로 상황화가 사회정의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는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진정한 인도 정체성을 이해하고 개발하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극단적 종교 정체성을 개발하려는 힌두트바의 관점에서 큰 사회나 교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위대한 나라의 미래는 모든 인도를 아우를 수 있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5) 인도의 선교 사역자들은 인도의 영적 전통에서 일부를 빌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깊은 영적 정체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인도에는 성자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6)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시키려고 신이지만 이 땅에 오셨다. 서로를 미워하게 만드는 악한 카스트 중심의 사회와 공동체에서 이러한 화목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즉 기독교 신앙은 분열을 조장하고 카스트를 받아들인다는 비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이 신으로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새로운 가치관과 기준으로 영원한 왕국을 세우려고 오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이러한 고민들을 해야 한다.

(7) 힌두트바 세력들은 죄와 질병 그리고 기타 문제들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는 예수의 실제적 능력을 비웃고 있다. 즉 용서와 치유, 구원의 신학 등과 함께 건강과 부, 번영과 즉각적 승리를 경험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힌두교적 사고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삶과 필요에 있어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는 중요하고 강력한 전환점이 된다.

(8) 그리스도인들이 공격당하는 문제 중 개종문제가 가장 큰데,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개종은 단순한 종교적인 결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행위로 여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종은 사회적 책략으로 여겨진다. 즉 정치적으로 위협을 주는 것이라 여겼다. 사회구조에 변화를 주려는 의도적 시도로 여겨진 것이다. 그리고 개종을 하면 기독교 정신인 교육과 해방에 영향을 받아 문맹자에 대한 정치적인 악습을 타파하게 된다.

(9)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따르고 싶은 삶과 종교를 선택할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관용하는 신학을 개발해야 한다. 복음을 설교할 수 있는 자유는 복음을 따르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자유의지 때문에 제한 받는다. 그러므로 복음의 최선의 증거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삶의 능력이다.

(10) 서구 기독교 선교단체들은 인도 교회와 선교에 관해 가지고 있는 그들의 관심과 의도를 적절히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인도의 그리스도인들은 더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순교는 기독교 메시지의 정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피 흘릴 때 진정한 가치를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5. 결론

 

 인도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상 중요하고 복잡한 전환점에 서 있다. 낡은 선교학의 범주와 서구로부터 들어온 최신의 일시적 유행을 따라가서 좋을 것이 없다. 사람들의 삶에 성육신적으로 깊이 개입되지 못하는 것은 먹혀들지 않는다. 선교의 정의를 토의하느라고 끝없는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다. 어려운 실제들에 맞닥뜨리고 있음을 알고 이것에 반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