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예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라
말 씀 : 엡 4:32 - 5:2
핵 심 : 불쌍히 여김 받았으므로 불쌍히 여겨라
핵심단어 : 불쌍히 여기라
대 상 : 수요예배
엡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러분 불쌍하다라는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단어는 내가 남에게 쓰면 괜찮은 것이지만, 내가 들으면 입장이 달라지는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움 속에 있다는 뜻이고 고통받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쌍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 단어를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중에 ‘나는 고민되고 힘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손드실 분은 손드시기 바랍니다. 예 없잖습니까? 손드시면 안됩니다. 예 잘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도 내 문제가 커요, 아니 내 문제가 더 커요, 할 수 없습니다. 각자 자기 문제가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고 고난 중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다들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온 것입니다. 귀신들렸거나 아프거나 사고 당했거나 죽었거나,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과 상황 때문에 예수님께 왔습니다.
마태복음 9장을 보면 두 맹인이 예수님의 소식을 듣자마자 소리치며 부르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에게 있어 두 눈을 뜨고 본다는 것은 삶의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언제 또 다시 이런 기회를 가질지 모르기에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소리친 것입니다.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고래고래 소리 지른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계속 외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이 이 소리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이 맹인들의 평생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귀신들린 딸을 위해 간구하는 가나안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도 예수님께 소리치기를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부르짖습니다. 저를 좀 안타깝게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내 상황이 죽을 것 같으니 제발 저 좀 살려달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어린 딸에게 귀신이 들렸습니다. 이런 일은 딸을 가진 부모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매일같이 귀신들린 딸을 지켜봐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란 정말이지 갈기갈기 찢기는 심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에 한 걸음에 달려와서는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 여인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께 목소리가 닿으려면 크게 외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절박하고 날 좀 불쌍히 여겨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외친 것입니다. 절규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여인을 보시고 믿음으로 나아온 가나안 여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 여인의 불쌍함을 아시고 그 마음의 소원을 이뤄주신 것입니다.
이번에는 귀신들린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의 간구함을 한번 찾아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17장입니다. 여기에는 귀신이 아들에게 들러붙어서 불에도 넘어뜨리고 물에도 빠지게 하는 상황의 아버지가 나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을 보더니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 말은 어린 아들이 귀신들려서 심한 고통을 당하고 괴로우니, 제발 내 아들을 살펴주시고 고쳐달라는 간구입니다. 어린 아들에게 귀신이 들러붙어 나오질 않으니 주님께서 제발 해결해 달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제 아들 좀 불쌍히 여기시고 어린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아들을 온전한 상태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일생의 소원을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들이 불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건들 속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불쌍히’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온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을 의지해서 간구한 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돌봐주시고, 제발 해결해 달라’는 마음가짐으로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의 소원을 예수님은 응답해 주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일생일대의 소원을 모두 다 들어주신 것입니다. 병에서 고침 받았고 귀신에서 해방되었으며 고통에서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즉 우리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며, 이것은 십자가의 구원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의 구원 역사를 바라보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시고 해결자이시며 죄와 모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고 죽음에서 해방되었으며 악한 영들을 물리칠 수 있는 권세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하신 성품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것은 곧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셨기에 우리가 이러한 은혜를 누리고 역전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그 이후의 생활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문제가 생깁니다. ‘불쌍히 여김 받아 은혜를 경험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선물로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냐’란 것입니다.
이 해답은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 말씀이 정답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보여주신 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셨냐’는 물음이 생기는데 그것도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 맞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불쌍히 여겨주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용서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친절, 즉 인자하심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는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발버둥치는 모습에 불쌍히 여겨 주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지은 더러운 모든 죄를 아낌없이 모두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 믿는 자들끼리 서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엡 4:24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만든 새 옷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의의 옷이라고도 부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신 의로움을 믿음으로 덧입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 모두에게는 보이지 않는 의의 옷이 걸쳐져 있는 것입니다. 이 옷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만들어진 옷입니다. 그리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 태어난 사람만이 입는 옷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옷을 입은 사람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엡 4:13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 말씀에서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바로 이곳까지 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신 모습까지 가라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모습이란 엡 5:2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자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과 무시와 무례함을 받으시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곧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이러한 고난과 피 흘리심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으로 인해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들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마음을 깨닫고 친절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를 서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사람이 된 우리들이 순종해야 할 모습입니다. 의의 옷을 값없이 거저 받은 우리가 행해야 할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 행하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의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사랑으로 인해 의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받은 사랑을 그대로 흘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은 의의 옷을 더럽히지 않도록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을 받는 자녀”의 모습인 것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있기에 거룩한 자의 모습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믿음의 자녀로서 서로서로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친절한 것이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용서하는 것인지 알아보시겠습니다.
친절하다라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녀들이기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상대방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는 자녀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자녀들은 한 아버지를 모신 한 형제자매들입니다. 각자 성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모습은 달라도 한 아버지를 모신 믿음으로 가족이 된 형제자매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으로서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은 부모로서 자녀들을 두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만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운다면 아이고 잘 한다 잘 해 아이고 내 자식들 예쁘다하고 예뻐하시겠습니까? 아니죠. 회초리를 들죠.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들이고 잠도 못 자면서 키웠고 똥오줌 다 받아주면서 키운 내 자식들인데, 부모가 보는 앞에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매를 드시는 것이 맞습니다. 네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따지지 않고 서로 때려주실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부모로서 같은 심정이십니다. 자녀들이 서로 헐뜯고 싸우면 정말 가슴 아파하시는 것입니다. 이 아들, 저 딸, 이 녀석, 저 녀석 다 사랑하고 계시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서로 싸우고 있으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처를 주고받고 있는 저 성도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면 우리는 서로 존중해주고 친절히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친절은 곧 한 아버지를 모신 자녀들답게 서로 존중하면서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아버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불쌍히 여김은 뭘까요? 불쌍하다. 불쌍히 여기다. 이런 말은 남에게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내가 들으면 정말 기분 나쁜 것입니다. 그만큼 절박할 때와 간절할 때 쓰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함부로 쓰지 못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다. 예, 그렇습니다. 그 상황이 안타깝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나도 이해하고 동조한다는 표현입니다. 불쌍히 여기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의 그 다음 단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나와 같은 형제자매임을 인정하고 그가 겪고 있는 고난과 어려움을 내 것인 양 느끼고 동일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저의 이 어려움에 대해 알아주시고, 이해해 달라는 기본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에는 ‘저의 이러한 고통과 아픔을 아시고 저의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왔으니 제발 해결해 주십시오.’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해결자라는 강한 신뢰를 갖고 있음을 아시고 그 믿음대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이 우리도 교회 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내 문제인양 서로 아파하고 보살펴주며 예수님의 긍휼하신 마음을 흘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냉수 같은 순종인 것입니다. 하나님만 아는 선을 많이 쌓을수록 하나님 나라에 쌓여집니다. 남이 모르도록 해야 하며 하나님만 아시도록 우리는 많은 긍휼함과 불쌍히 여김을 형제자매들에게 흘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쌓여 있을 예수님의 칭찬과 면류관을 바라볼 때 더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김 받았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용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용서는 일단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용서라는 단어 자체가 내가 벌써 상처 입었고 누군가에게 아픔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용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것은 나에게 깊은 아픔을 주고 씻기지 않는 상처를 남긴 사람에게 베풀어야 할 덕목입니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두신 것 같습니다. 친절이나 불쌍히 여김은 그래도 할 수 있는데 이 용서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앞의 두 개는 내가 베푸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용서는 내가 당한 것을 뛰어 넘어서 이겨내야 비로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상처와 기억, 그리고 아픔이라는 걸림돌이 있기에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않았다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겨낼 수 있고 성령님이 인도하심으로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인간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에서 ‘그래, 저 인간도 천국에서 볼 것인데 뭐, 그래 니나 내나 다 똑같지 뭐’ 하면서 조금씩조금씩 이겨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 때문에 이것이 가능합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으로 보여주신 용서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처럼“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용서하심을 우리가 입었기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용서를 못하시겠다면 그 사람을 생각하시면서 그가 받을 수 있는 복들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힘드시겠지만 용서할 수 없는 그 사람에게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자신을 버리는 모습입니다.
내 자신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있는 상처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픈 기억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버리기 어렵고 자꾸 기억이 나신다면 잊으려고 노력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한 단계 성숙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던 우리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도 제목을 붙들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한다면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용서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세월이 약이야 라고 하지만 어떤 것은 세월약도 듣지 않습니다. 계속 생각나고 은혜 받을 만하면 괴롭게 합니다. 이런 것은 영적인 공격입니다. 영적으로 굳건해 지려는 것을 막는 것이기에 이것은 영적인 공격으로 간주하시면 됩니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용서하려는데 자꾸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시고 내쫓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는 기억 때문에 괴로워 울거나 아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한 영이 그렇도록 조장해서 성령충만을 방해하는 것이기에 믿음으로 선포하시고 담대히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핵심은 예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심을 받은 자는 동일하게 형제자매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리고 사랑을 받고 있는 자로서 또한 사랑을 받을 자녀로서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순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며, 새 사람의 옷을 입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순종해야 할 모습인 것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고 우리 마음을 도적질하지 못하도록 선한 마음으로 오히려 공격하시기 바랍니다. 그 선한 마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강의 무기입니다. 거짓과 헛된 것에 매달리지 마시고 또한 성령님을 근심하시도록 만드는 모든 행동에서 떠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행동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기분 좋은 냄새가 우리에게서 번져나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시어 뜨거운 십자가 불에 자기 몸을 던지셨듯이, 우리도 내 자신을 버리고 향기를 내품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에게서 좋은 냄새가 나길 소망합니다. 그 냄새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이 시원케 되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시고 내 안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김을 받은 것을 생각하시고 다른 형제자매들도 불쌍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매달리시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왔던 사람들이 모두 해결 받은 것처럼 우리도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아뢰면서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옆에 분들과 서로 이렇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 고맙습니다. 자 그럼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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