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논문

선교사 바울의 기도

잔잔한 파도... 2009. 5. 28. 21:55

 

선교사 바울의 기도

 

 

 

 

담당교수 : 김학유 교수님

제 출 자 : 유성두 강도사

 

 

 

    들 어 가 기

 

 

 바울의 기도에 대해서는 많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다각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기에 짧은 글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선교사 바울이 했던 기도의 배경과 기도 신학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아울러서 선교사 바울이 한 기도들은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선교사들은 스스로의 경건생활과 사역의 방향,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동행함을 위해서라도 기도생활에 항상 전념하고 집중해야 한다. 바울은 선교사로서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고 바울이 한 기도들은 우리에게 도움과 깊은 고찰을 얻게 해준다.

 

 

 

  1. 성경에서의 기도

 

 

 1) 기도에 대해(신약성경 위주)

 

 신약성경에는 바울과 연관되어서 씌여진 기도라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기도라는 단어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것은 “proseuChv”로서 기도하다, 누구에게 기도하다, 요구하다, 탄원의 기도 등의 의미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다. 그 중간 디포넌스 동사 proseucomai와 함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proseucomai)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proseucomai의 동사는 신약성경에서 86회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외도 deomaiaitew, euchv, eucomai등이 쓰인다.

 신약에서의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를 출발점 및 중심부로 삼고 있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을 기도의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사역 곧 병 고치는 일과 귀신 쫓는 일 등을 포함하는 이적 사역이 기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약의 기도의 뚜렷한 특징은 응답이 확실하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과 버려야 하는 것 등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모든 기도의 전제 조건이다.

 신약 기도는 예수님의 삶과 기도가 그러했듯이 지극히 종말론적이며(행1:4), 예수님의 부활 승천과 성령의 임재가 종말론적이듯이 종말론적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의 재림도 기도로만이 맞을 수 있다(마25장).

 

 

 2) 기도의 정의

 

 일반적으로 기도를 정의하면, 인간의 필요를 하나님께 요구하는 행위이다. 죤 칼빈도 “기도라는 혜택을 통하여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나님의 보고를 여는 열쇠”라고 했다.

 그리고 칼빈은 기도를 영혼의 호흡으로 이해하면서,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연락으로서 이를 통하여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성소 가운데 들어가 하나님 옆에서 그 약속에 대한 요구를 호소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복음이 믿음의 눈을 통하여 보여주는 보화들을 기도를 통하여 파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14:23)”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마26:42)”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록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5)”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2. 바울의 기도

 

 

  1) 바울 기도의 유대적 배경

 

 바울이 회심하기 전의 사울은 다소의 길리기아에서 유대 민족주의적 엄한 분파에 속해 있었다(행26:5). 바울은 사도행전의 구절에서 예루살렘의 적대적인 청중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엄한 교훈들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즉 바울은 그의 부모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어린 시절에 예루살렘으로 이주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된다. 청년 바리새인 바울은 “유대 조상의 유전에 지나치게 믿어......열심 있는 자(갈1:14)”였으며, 자신이 말했듯이 “율법의 의에 대하여는 흠 없는 자(빌3:6)”였다. 바울이 특별히 열심과 헌신을 쏟았던 “조상들의 유전”은 바울이 그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통해서 배우게 된 조상들의 교리들과 풍습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전제 때문에 바울이 바리새파 유대주의의 기도에 능숙한 랍비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찬양, 축도, 죄고백, 간구, 감사, 중보 기도는 사울의 일상생활이었다.

 경건한 랍비들 사이에 공적인 기도의 형식은 식사와 출생, 혼인, 장례, 율법의 낭독과 연구와 지역 회당 예배, 국가적 종교 축제와 예루살렘 성전 기도문(예배의식)과 같은 생활 전승에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의 증거는 상당히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친밀성을 나타낸다(시22편, 25편). 그러나 바리새주의는 많은 개인적 기도에 “쉐마(신6:4-9; 11:13-21; 민15:37-41)”와 같은 고정된 형태의 기도를 따랐다.

 아침과 저녁, 제3시와 제9시 정각에 기도를 했고(스9:5; 단9:21), 축도를 포함하여 의무적이었다. 하루 세 번 반복하여 기도했으며(시55:17; 단6:10; 행10:9) 철저한 자기 절제와 시간 엄수를 지켰다.

 

 

  2) 바울 기도의 헬라적 배경

 

 바울은 스스로를 유대인이면서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라고 말했다(행21:39). 여기서 다소라는 성은 작은 성읍이 아닌 인구 50만의 규모있는 도시였다. 그리고 상업적인 도시로서 무역의 중심지였다. 또한 다소는 위치적으로 군사 중심지가 될 만큼 정치적인 지위가 있는 도시였으며,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버금가는 학문의 도시의 였다. 그래서 바울이 헬라의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길리기아 다소 출생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은 염두에 두었으며, 헬라적 배경이 바울의 여러 방향과 모습에서 표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울이 행21:37에서 헬라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 천부장이 놀랐다는 말씀으로 비춰봤을 때, 바울의 세계관은 헬라적 문화와 교육적 배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행23:6에서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했고, 빌3:6에서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런 것으로 보아 헬라적이긴 하지만 헬라주의자는 아니었던 바울은 헬라 영향에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바울이 헬라 문화에서 나온 이미지들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헬라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헬라의 정치적 개념이 나타나 있는 빌1:27; 3:20에서는 헬라적 표현이 있고, 빌2:16; 3:14, 고전9:24-27, 고후4:8-9에서는 헬라의 경기를 묘사하고 있다. 몬1:18, 골2:14에서는 헬라의 상업용어가 나오고 있으며, 갈3:15; 4:1-2, 롬7:1-3에서는 헬라의 법적 용어가 나오고 있다. 살전2:19에서는 황제를 공경하는 헬라의식이 나타나 있고 행17:28, 딛1:12에서는 바울이 헬라의 시인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바울 기도의 분류

 

 

 바울이 기도한 내용들을 위주로 분류하면 중보기도, 사역기도, 찬미기도, 요청기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삶을 늘 예배드리면서 삶 속에서 기도를 생활하였고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는 기도가 있었다.

 

 

 1) 중보기도

 

 바울의 선교적 기도는 각교회를 향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의 관심과 걱정 그리고 고민은 각교회였다.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8)”

바울의 기도도 이러한 것을 반영하고 있듯이, 서신서에서 보여주는 기도들 중 많은 수가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였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1:9-11)”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신앙 성숙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길 원하는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은 교회로서 바울은 점점 성화의 깊고 풍성한 열매가 맺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원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9-12)”

여기서도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신상이 더욱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 하나님의 영광이 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선교사 바울은 연약한 교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해가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5-19)”

에베소서교회도 마찬가지로 바울은 교회를 이끌어가시고 풍성하도록 만드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마음 눈을 열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부르짖고 기도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4-19)”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다.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기를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3:11-13)”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성도의 견인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살후1:11-12)”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해 다시 기도하고 있다. 항상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얻으시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소관도 아니고 우리의 뜻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이며 역사하심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지해서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를 했고 날마다 교회를 생각했다. 그것이 기도로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각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바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바울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2) 사역기도

 

 바울은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의 자녀가 되면서부터 그가 시작하고 계속 이어서 했던 것은 기도였다.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행9:11)”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바울은 기도로 풀어가려 했고, 기도로 응답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려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2-3)”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 바울은 먼저 기도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힘썼다. 교회의 방향과 정책을 결정할 때도 바울은 기도 한 후 정하고 결정했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행14:23)”

 

 바울은 선교지를 정하고 베이스를 구축한 다음, 기도처를 정해 기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사역 중 기도하는 것에 쉬지 않았음 보여주며 기도는 중요한 해석이고 해답이며 해결 방안이었던 것이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행16:13)”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행16:16)”

 

 바울은 사건과 연속해서 기도로 준비하고 기도로 감사하며 기도로 갈 길을 정했다. 또한 기도로 결정하고 기도로 함께하며 기도로 동역자들과 함께 했다. 교육과 생활과 신앙과 결정과 확인을 기도로 풀고 얻고 해결했다.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행20:36-38)”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쌔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행21:5-6)”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행22:17-21)”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륙 인이러라(행27:35-37)”

바울은 떡을 가져 기진맥진하고 삶에 의욕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이끈다. 죽은 자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믿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 은혜가 흘러가는 것이다. 바울은 축사로 하나님의 은혜를 흘러보내는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행28:8)”

병을 낫게 하는 것은 바울이 안수한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했다고 분명하게 쓴 것도 바울의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선교사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항상 우선 순위를 두었으며, 자신이 드러내고 높여지는 것에 경계했다.

 

 

  3) 감사기도

 

 바울은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하는 것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고대하고 기대했던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바울의 기도가 더 깊어 보이는 것은 그가 과연 평안할 때만 기도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감옥에서 생활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고초와 고난을 겪은 사람이었다. 선교사의 삶은 순탄하다고 보면 순탄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 각자마다의 생활과 상황, 그리고 일들이 있다. 고난으로 볼 수도 평안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천국에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바울이 바라본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기대한 것은 하나님의 면류관이었으며 간절히 원한 것은 하나님의 주신 사명 다 감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도할 수 있었고 찬양할 수 있었으며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감옥에서도 매 맞을 때도 헐벗고 굶주려도 그리고 조롱당하고 배신당해도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이 괴수 중의 괴수인 나에게 사명주신 은혜요, 감사함이요, 긍휼하심에 대한 깊은 기쁨 때문이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온 몸에 뜯긴 상처고 살점이 찢어졌는데 바울은 기도하고 찬미한다. 꼭 고난을 기다린 사람처럼 말이다.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하기까지 받은 은혜에 감사했기 때문이다. 고난도 고난이 아니고 아픔도 아픔이 아닌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나오고 입에서는 신음만 나오지만, 배에서 목구멍을 타고 나오는 소리는 기도였고 찬미였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소리였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아픔에 이빨을 꽉 물어도 이빨 사이로 나오는 소리는 희미하게 기도하기 시작하는 소리였고, 그 희미한 기도소리가 찬양과 감사로 바뀌는 역전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예수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며 바울의 괴로움과 연약함,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주께서 연약해졌을지 모를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기쁘고 감사하고 위로받았으며, 힘을 얻었을 것이다.

 바울이 찬미할 수 있었던 것은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만나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선교사로서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며 감사한다. 동역자들이 세워지고 자라나고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감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 모두 하나님이 긍휼하심으로 부어주시는 위로함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딤후1:3-4)”

디모데의 성장은 마지막 가는 바울에게 있어서의 위안이었고 하나님의 위로하심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감사하고 기뻐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바울은 그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썼다. 그러나 이 편지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서만 쓴 것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성도들도 서로 돌려가면서 읽도록 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늘 감사하라고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난당할 때도 힘든 핍박과 아픔이 있어도 주님께 기도하고 찬미하는 것은 결코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다. 그리고 찬미 드리는 자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다.

 

 

  4) 기도부탁

 

 ① 기도요청

 

: 바울은 선교사로서 동역자들과 성장해가는 교회에 기도해 줄 것을 권유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요청하기도 한다.

 바울을 위해서 아니면 사역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요청기도는 주로 선교를 진행해 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두고 기도요청을 하고 있다. 그리고 권유기도는 기도로 성장해가고 성화의 깊이를 더 깊어지도록 권유하는데 있다.

 

 먼저 기도요청에는 서신서에 주로 나타나 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1:11)”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바울은 선교사로서 각 교회가 기도로 성숙해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길 원했다. 그것은 곧 감사할 수 있는 이유였고 함께 할 수 있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골4:3)”

 바울은 골로새교회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도제목은 전도의 문이 열리게 해달라고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는 바울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역자들의 뜨거운 기도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살전5:24-27)”

각 교회들에게 편지들은 읽혀졌고 그러므로 바울과 동역자들을 위해 교회는 기도하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전도의 문이 열려지고 새로운 동역자들이 일어날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도록 나아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쓰임받는 은혜를 입은 종들은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며 서로 의지하고 동역하고 사랑해야 한다. 선교는 인간이 주체가 아닌 하나님이 주체이시며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기도요청한다. 함께 나아가기 위함이고 하나님의 비전을 같이 이루기 위함이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롬15:30-31)”

 바울은 로마교회에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복음의 전파와 성도의 성화, 그리고 교회의 성숙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바울은 선교에 있어서 기도의 힘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의 간절한 기도로 복음 전파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고 이뤄가는 것이다.

 

 

 ② 기도권유

 

: 기도요청과는 조금 다르지만 기도권유가 있다. 서신서들을 보면 바울은 교회의 성숙과 유익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유함을 볼 수 있다. 때로는 간절하게 때로은 엄하게 권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선교지에서 기도는 필수고 생활이고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선교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선교사의 영은 메말라질 것이고, 선교 비전을 이루어야 할 본분도 점점 흐려지게 될 것이다. 기도는 호흡이고 살아가는 방법이며 성숙하도록 이끄는 이정표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2:1-2)”

 성도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그리고 위정자들까지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이시고 방패이시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위정자들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이 섭리로서 특별한 보호하심도 있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은혜는 위정자들이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 할 것이라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2:4-8)”

믿음과 진리는 오직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그 믿음과 진리는 퍼져나가서 각처 선택된 모든 사람들에게 입혀지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필요하고 서로의 성화와 깊고 넓은 신앙을 위해 기도가 필요하다. 여기서 바울은 기도요청이지만 권유의 성격을 띤 기도권유를 하고 있다. 그러나 확고하고 신념으로 가득차서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는 권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골로새교회에 바울은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권유하고 있다. 그리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항상 깨어있으라고 또한 권유하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숙과 성도 개개인의 성화는 기도로 헤쳐 나가야 한다. 말씀 안에서 방향을 찾고 기도로 순간순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산 만큼 성화되어야 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4-7)”

 빌립보교회에 당부하고 권유하는 것은 기도로 구하고 기도로 아뢰며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염려하지 않을 이유며 기뻐할 수 있는 이유며 착한 행실을 이루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본인 스스로가 기도로 무장하고 기도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맡기신 양떼들에게 그리고 지역에 흘려보내야 한다. 나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 흘려 보내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흘려 보낼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사는 항상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가꾸고 안에 흘러나는 샘물을 선교지에 흘려보내야 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6:18-19)”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기도하기를 권유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고 권유한다.

 기도는 선교사역에 큰 힘을 실어준다. 기도는 선교의 문을 열게 해주고 복음의 비밀이 전해지도록 이끌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간구하는 힘인 것이다.

 

 

 

 

    4. 맺 음 말

 

 

 바울은 기도를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알게 해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기도는 곧 하나님이 명령하신 선교의 비전과 뜻을 진행해 나가는데 큰 힘이라고 생각했다. 기도는 그래서 쉬지 않고 해야 하는 것이며 항상 해야 하며 감사함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괴로움에 몸부림 칠 때도 온 몸이 찢기는 상처투성이일 때도 그리고 기뻐하고 즐거운 순간에도 바울은 기도하라고 한다. 그리고 본인도 직접 본을 보여주었다.

 선교사는 기도하는 사람이다. 선교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며 살게 되는 것이고, 기도를 게을리 하게 된다면 선교지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오히려 방해를 할 수도 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은 개인 경건을 유지함에 있어 기도를 쉼 없이 해야 하며, 길을 걸을 때도 차를 타고 있을 때도 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때도 항상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민첩하게 움직이도록 선교사는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생활을 어느 순간 일과 상황에 의해 점점 기피하기 시작할 때, 선교사는 인간의 힘과 방법으로 선교를 이루려 하고 진행하려 한다. 영적인 둔감함 때문이며 하나님께 가까이 있지 못함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바울은 혼자만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같이 기도했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했다. 기도는 혼자해도 좋지만 믿는 성도들이 함께 기도할 때 더 큰 역사함이 일어난다. 선교에 있어서 기도는 그래서 중요하며 그래서 해야하는 것이다.

 앞으로 선교지에 갈 예비 선교사는 기도로 준비해야 하며 기도생활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다면 선교지가서 뜨거운 은혜로 기도 많이 할 거란 막연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 선교지가 전쟁터라 기도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무의미하다. 있는 그 자리가 기도처며 전쟁터며 준비되는 공간이다. 있는 그 자리에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준비는 없는 것이며 훈련도 없는 것이다. 기도는 삶이고 호흡이며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바울이 보여주고 말씀한 기도에 대한 핵심은 이것이다. “기도해야 한다”이다.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기도해야 성숙을 이뤄나가는 것이고 기도해야 선교는 더 큰 활력이 생긴다. 그러므로 기도는 필수고 기도는 꼭 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해야 산다. 그리고 기도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기도해야 선교사는 선교사가 되어 가는 것이다.

 

 

 

 

      참 고 문 헌

 

 

이한수,「갈라디아서」(서울: 횃불, 1997)

 

성종현, “유대문헌과 신약성서에 나타난 기도,”「장신논단」9(1993. 12)

 

박금주, “바울의 기도 신학에 대한 고찰” (미간행 목회학석사학위논문,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1999)

이현덕, “바울의 기도의 형식과 내용에 관한 주석적 고찰” (미간행 목회학박사학위논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대학원, 2001)

 

죤 칼빈,「기독교 강요 Ⅲ」김문제 역(서울: 세종문화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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