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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 1

잔잔한 파도... 2009. 2. 12. 23:30

 

 

 

예수님의 비유 1

 

 

 

 

  1. 정 의

 

 

 비유의 정의를 한마디로 대답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비유라는 용어 자체가 성경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약 성경에 쓰여져 있는 용어인 ‘파라볼레(παραβολη)’라는 말의 히브리적 배경에서 사용된 '마샬(םשל)'의 의미를 살펴 보아야 한다.

 구약에서 사용된 '마샬(םשל)'은 “- 와 같이 되다”와 “나타나다”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마샬(םשל)'이라는 용어는 모든 종류의 구상적인 말들, 즉 비유, 직유, 알레고리, 우화, 속담, 묵시적인 계시의 말, 수수께끼, 익명, 상징, 허구의 인물, 주제, 논증, 변호, 재담 등의 표시로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또한 '마샬(םשל)'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39번 나온다. 모욕이나 풍자의 표현으로 속담과 비웃음으로 쓰이며, 지혜의 말로는 잠언, 예언적이거나 교훈적인 것은 담화로 그리고 알레고리로 그 의미가 사용되었다. 즉 구약 성경에서 마샬은 비유라는 단순한 개념보다 휠씬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신약성경에 사용된 ‘파라볼레(παραβολη)’도 마찬가지로 유사한 개념의 넓은 범위를 가리키고 있다. 신약성경 가운데 비유는 공관복음서에서 46번이 쓰였다. 상징은 히브리서에서만 2번, 비교는 마가복음에서만 1번, 속담은 누가복음에서만 1번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유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면 ‘파라볼레(παραβολη)’는 파라와 발로란 두 말을 결합한 단어로써 파라는 “곁에, 가까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며, 발로는 “던진다. 놓는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즉 ‘파라볼레(παραβολη)’라는 말은 “무엇을 비교할 목적으로 다른 것을 곁에 놓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희랍어 문헌에서의 파라볼레는 ‘옆에 놓이는 것’,‘비교’,‘은유’,‘직유’,‘짧은 이야기’,‘알레고리’,‘해설’등의 다양한 의미로 쓰였으며, 신약 성경속에서도 그 의미는 속담, 은유적인 비유 혹은 비유적인 말을 의미하고 있다.

 비유라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 정의하면, 비유란 ‘영적인 진리를 밝혀 주기 위한 짧은 혹은 확대된 비교의 형식을 지닌 언어 형태’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성서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예증하는 데, 그 형식을 취한 것이다.

 

 

  2. 분 류

 

 비유의 분류 역시 그 숫자나 방법에 있어서 다양하다. A.M.Hunter는 그의 책 “Interpreting the Parables”에서 학자들이 제시한 신약 성경내의 비유의 수를 소개해 주고 있다. 트랜취는 30개로 보았고, 브루스는 33개로 보았다. 그리고 율리허는 53개로 보았으며 스미스는 62개로 본다고 한다.

 특히 스타인은 복음서 안에 있는 비유의 수를 열거함에 있어서 비유임에 확실한 정도에 따라 비유를 분류했다. 그는 비유라는 명칭이 붙어있는 것을 총 30개로 보았고, 비유라는 이름은 없지만 분명한 비유인 이야기들이 총 17개로 보았다. 또한 “마치, - 처럼, - 같은”의 말로 시작하는 비유 형태의 이야기들이 총 49개로 분류하였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비유일 것으로 생각 되어지는 말씀이 26개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비유라 불려질 수 있는 용어에 관한 성경적 이해에 의하여 대략 비유를 50개로 보았다.

 비유 자체가 갖는 의미의 다양성 때문에 비유의 분류도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비유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자마다 좀 다르게 분류됨을 알 수 있다. 키스트 메이커는 실화체 비유, 이야기체 비유, 예화체 비유로 나누었으며, 린네만은 비교, 순수한 비유, 예화, 알레고리로 구분하였다.

 스타인은 이야기식 비유, 본보기식 비유, 알레고리로 분류했다. 이야기식 비유는 일상적인 사건에 관한 일반적인 서술로 시작하는 비유와는 달리 이야기식 비유는 단일 사건을 가리킨다. 예로 눅 16:1, 마 21:28, 눅 14:16 등이 있다. 본보기식 비유는 비유의 표면에 더 가까운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주로 행동을 위한 모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보기식 비유 안에는 그림 부분과 실재 부분이 있어서 그림 또는 은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실재와 보다 가까운 것이 있다. 눅 12:16-21 이 예이다. 알레고리는 일련의 은유들을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라고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야기나 본보기식 비유는 하나의 중요한 비교를 갖고 있는데 반하여, 알레고리는 몇 개의 비교를 갖고 있다. 가장 유명한 알레고리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다. 성경의 예는 막 12:11이다.

 결국 비유는 비유 자체의 의미의 다양성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으며, 비유의 형태, 주제, 문학적인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는 것이므로 어느 한가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사용 목적

 

 복음서안에 많은 비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가르치기를 좋아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왜 예수님은 비유로 가르치는 것을 선택하였으며 비유는 어떤 진리를 예증하는데 사용되었는가란 물음이 생긴다. 예수님께서 종종 그의 비유를 설명해야만 했던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비유는 그의 제자들에게 조차 항상 분명한 것이 아니었음을 볼 수 있다(막 4:13,34, 7:17). 그러므로 때때로 비유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나타내고 예증하는 반면에 그 내용을 숨기기도 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셨던 목적을 3가지로 설명하면, 첫째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라는 형식으로 가르치셨으며, 그 목적은 비유라는 그 자체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비유는 그것의 속성에 의해 청취자로 하여금 그 내용에 반대하기가 어려운 특징이 있다. 비유의 서두는 청취자의 경계심을 낮추고 방어자세를 제거해 주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예수님은 그의 청중의 적의와 완악함을 통찰하셨으며 비유로 그들에게 나아가셨다(눅 7:36-50). 이러한 예로 사무엘하 12:1-4에 나오는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범죄를 비유로 깨달게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 또한 그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적의를 없애고 보다 더 나은 관찰을 위해 비유를 사용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하고, 예수님의 추종자들이나 “외인들”에게 그의 말씀을 보다 더 잘 나타내고 예증하기 위해서이다. 즉 진리를 생동감있고 기억하기 쉬운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종종 비유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있고 훌륭하게 전해주는 예화이다. 즉 예수님이 비유에서 예시하고자 하는 중요한 핵심인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제자뿐만 아니라, “외인들”에게 까지 예증되지 않으면 안되었다(막 12:12).

 셋째로 예수님의 비유사용의 목적은 감추기 위한 목적이 있다.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권세를 가진 자들과 예수님은 갈등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에 책잡고 고발하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심으로 결점을 찾으려하는 사람들을 혼돈스럽고 곤란하게 만드셨다. 때때로 수수께끼 같은 비유에 그들은 어리둥절하게 되었고 깨달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여 이 모든 것을 지혜롭고 총명한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이 같은 자에게는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마 11:25)”라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감추는 것이 비유의 목적 가운데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근본적인 목적은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수단으로 비유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완악함을 보여주는 이들로 인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는 축복의 수단이지만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수단이 된다.

 

 

  4. 비유의 특성

 

 예수님은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실 때 그의 청중들이 알지 못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비유는 비유들이 전해주는 메시지와 의미의 적합성, 자각성 그리고 아름다움과 호소력 등에 있어서 다른 것들과 비교할 때 탁월함을 볼 수 있다. 비록 예수님께서  비유라는 유형을 창안하신 분이 아닐지라도 비유라는 유형의 가르침에 독창성을 부여한 것은 분명하다.

 예수님의 비유의 특성에 대해 A.M.Hunter는 3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수세기 동안 이야기의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이, 비유는 반복과 대조와 3개의 주된 성격과 결말을 강조하는 법칙이 나타난다. 둘째, 예수님의 비유는 미리 준비해 온 내용보다는 오히려 생활 속에서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셋째, 예수님의 비유는 응답과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특성이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예수님의 비유는 자기 당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주된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의 특성들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시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의 주된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