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
2008. 9. 22
설 교 자 : 유 성 두 강 도 사
본 문 : 마 20:1-16
제 목 :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
본 문 구 조 신 학 적 설 교 적 용 1절 - 주인공은 하나님 2~7절 -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 8~15절 - 하나님의 공평한 나눔 16절 -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
본문탐구 - 1절 : 하나님은 작정하시고 선택하시며 이루시는 분이 다. - 3절 : 품군에 대한 비교와 차별 이 없다(외모, 학벌, 지 역, 성별). - 4절 : 세상적 기준으로 선택하 시는 것이 아닌 은혜로 선택하신다. - 4절 : 공평하신 하나님. - 7절 : 인간 스스로는 의를 행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시며 이끌어주셔야만 한다. - 10절 : 인간의 오해와 교만함. - 12절 :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인간의 무지와 교만함. - 14절 : 하나님의 뜻은 은혜와 사랑과 공평. - 16절 :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
포도원 일군 비유는 영생과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한 설명이다.
신론 - 구원에 대한 선택하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인간론 - 인간이 가진 비참함. 인간 스스로는 의를 이 룰 수 없다. 인간이 이루는 허무한 공로주의.
기독론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 의를 이루셨 다. 또한 믿는 자에게 이 의 를 은혜의 선물로 덧입혀 주셨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예 수님의 의로 인해 사망에 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은 혜를 얻었다.
성화론 - 믿는 자는 천국을 소유 했으며, 천국의 소유한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 로 모신 한 가족이다. 그 러므로 한 아버지 밑에서 한 형제고 한 자매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기뻐 하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생각하면서 설교를 시작한다. 예화보다는 생각하고 들어가도록 이끄는 멘트로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주의 은혜를 입었으며 지금도 입고 있고 하루라도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본문이며, 인간의 교만과 연약함이 드러나는 본문이다. 예수님은 이 본문에서 천국에 들어 올 수 있는 길은 인간의 노력이나 헌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 뿐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세상적 기준으로 보면 별 볼일 없고 아무 쓸데없는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의 긍휼의 눈에는 존귀하고 사랑받을 자로 비췰 뿐이다. 이것이 은혜고 이것이 감사할 내용이며 이것이 감격하게 만드는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오직 주의 성실하심과 순종하심으로 값없이 거저 얻은 너무도 큰 선물, 그것이 천국이며 영생이며 구원이며 선택받은 기쁨이다. 오직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선하심만 드러내야 할 존재가 바로 값없이 선물 받은 우리들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리로다.
1.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2.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5.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12.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주인이 그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과 천국 백성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감사하고 감동해야 만 하지를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20:1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포도원이요, 집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품군은 우리들입니다. 믿는 사람들, 다시말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을 찾고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이른 아침부터 성실한 성품으로 구원받을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품군은 그럼 뭡니까? 일하는 사람인데,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꼭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만이 품군이라고 칭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의 품군은 명칭만 품군일 뿐, 그가 받은 것에 비한다면 품군이라 하기보다는 은혜받은 자라는 명칭이 더 낫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하나님은 말씀처럼 이른 아침 부지런하신 성품으로 일찍 나와서 품군을 찾으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은혜입을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의 성품에 있습니다. 그 성품이란 사랑이라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성품이 선택기준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선택기준이며 합당하지도 명확하지도 그리고 세상이치에 맞지도 않은 기준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분명하며 정당하며 모순되지 않는 확실한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선택하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기준이시고 그분이 선택의 기준이시기에 합당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기준이란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은혜의 시작입니다. 인간적인 어떠한 기준도 통하지 않으며 어떠한 공로나 자격, 위치, 재물 다 소용없고 오직 주의 은혜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기준으로 품군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장터에서 초조하게 일할 곳을 찾던 품군들을 하나둘 그저 사랑의 기준으로 선택하십니다. 아마도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보시면서“당신도 오시오, 오 그래 당신도 이리 오시오. 어이 거기 있는 사람도 이리 오시오”하시면서 불러들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생각건대 하나님의 마음은 즐거우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일하는 곳을 찾은 품군들의 들뜬 얼굴과 표정에, 그리고 앞으로 있을 큰 선물에 하나님은 분명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아침에 나가보니 장터에 사람이 또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늦게 온 듯합니다. 하나님은 또 그들을 부르십니다. “아니 왜들 이러고 있으시오. 자 모두들 내 포도원에서 일합시다. 자 일어나시오”하시며 있던 자들을 모두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때도, 오후에도 나가보니 계속 사람들이 장터에서 일할 곳을 찾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젠 늦어서 일할 곳도 없겠지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인심좋게 생긴 어느 주인이 자기들을 다 불러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입이 그냥 찢어지게 좋았을 것입니다. “야 이게 웬 떡이냐. 이런 시간에 왔는데도 일할 곳이 있네. 진자진자 운수대통이네”하면서 싱글벙글하면서 일하러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주인의 마음도 즐거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돈을 받게되면 더 놀랄 것이라고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임금을 지불하려고 미리 생각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표정도 즐거우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좋아할 것을 상상해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도 나가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요. 그 늦은 시간에도 품군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풀이 죽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안가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을 못하면 걱정하는 가족이 떠올라, 더더욱 발걸음을 떼지 못한 사람들은 조급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후덕하게 생긴 사람이 오더니 “아니 여태까지 뭐했기에 여기서 놀고 있는 것이요?”, 그들은 풀죽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일 잘하게 생기지 않았는지 주인들이 우릴 데려가지 않았습니다”,“흠 그렇군, 그럼 늦었지만 자 모두 우리 포도원에 갑시다. 가서 일할 것이 있으니 모두 다 같이 갑시다”. 그들의 눈은 놀란 토끼눈이 되었을 것입니다.‘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지금이 몇시인데 우리를 품군으로 쓰겠다니, 이야 잘 됐다. 늦게까지 안가길 참 잘했다.’하면서 그들은 신이 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두고온 가족들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너무너무 감사했을 것입니다.‘우리는 보기에 일 잘하게 생기지 않아 선택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일할 수 있게 되다니, 이야 너무 기쁘다.’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아마도 열심히 일했을 것입니다. 포도원에는 미리 온 사람들이 땀을 흘리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인심 좋은 주인을 만났다고 아주 좋아하며 일을 합니다. 아마 일도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땀을 흘리면서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조금 있다 받을 임금에 대해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윽고 날이 저물게 됩니다. 이들의 눈에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릅니다. ‘아, 드디어 품삯을 받는구나. 아 너무 감사하다. 일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도 하고 돈도 받다니 ’하면서 그들은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청기가 오더니 늦게 온 사람들부터 임금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일찍 온 사람들부터 주는 것이 관행인데 이 주인이 좀 특이하게도 늦게 온 사람들부터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때 늦게 온 사람들이 돈을 받더니 소리를 지릅니다. 일찍 온 사람들은 “아니 무슨 일이요? 무슨 일이기에 이리 좋아들 하시오?”, 늦게 온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돈을 받았기에 기뻐했던 것입니다. “자 이걸 보시오. 한 데니리온이요. 아니 이렇게 늦게 왔는데 한 데나리온이나 주시다니, 이런 고마울 때가 어디 있나.”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일찍 온 사람들은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호, 그래 늦게 왔는데도 한 데나리온이나 받았다 이거지. 그럼 우리는 더 받겠네. 여길 오길 참 잘했어. 새벽에 옆에 있던 그 사람 따라갔으면 이렇게 횡재도 못했겠지. 이야, 오늘 운수대통인데. 그래 얼마 주나 좀 보자”이윽고 맨 처음 온 사람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들 앞에 있던 아침 9시 때 사람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은 것을 보고 뭐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거 뭐야 나도 한 데나리온 받는 거 아냐? 설마,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일했는데 더 주겠지”그런데 돈 주머니에서 청지기가 한 데나리온을 꺼내서 줍니다. 더 받을 줄 알았는데 한 데나리온만 받은 것입니다. “아니 더 없어요? 혹시 더 주기로 한 것을 까먹은 것 아닙니까?”그런데 청지기는 “아니 한 데나리온씩 받기로 했잖소? 약속한대로 준 건데 뭐 이상합니까?” 갑자기 그들은 화가 치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뭐야. 기껏 일 해줬더니 한 데나리온 밖에 안줘. 저 사람들은 늦게 왔는데도 한 데나리온이나 주고 우린 왜 같이 싸잡아서 한 데나리온이야?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냐? 정말 너무하네. 돈 좀 있다고 사람 무시하는 거야 뭐야? 주인장 나오라고 해! 우린 그냥 못가. 이거 정말 너무하잖아.”하면서 소란을 피웁니다.
그때 주인이 옵니다. “아니 이보게들, 대체 왜들 그러나? 뭐가 잘못되었는가?”품군들은 주인장에게 따지듯 불만을 내뱉습니다. “아니, 주인장. 이거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우린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일했는데, 정말 너무하시네요. 하루 종일 땀 흘리면서 뼈 빠지게 일했는데, 조금 전에 온 저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하시다니요. 이거 정말 너무하시네요.”주인장을 말을 듣더니 말합니다.“이 사람들아. 내가 언제 자네들과 한 데나리온 이상을 준다고 약속했는가? 난 자네들과 한 데나리온 이상을 준다고 약속한 적이 없는데, 잘못 알고 있었구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사람들이 그러면 쓰나? 마음을 좋게 먹어야지. 이 사람들에게 주는 것도 내 마음이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것인데,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 어떻하는가? 내 것을 가지고 내가 선하게 사용했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이보게들 자네들 그러면 못써. 힘든 처지에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혼자만 잘 살겠다는 것 좋지 않아. 자 이제, 어여들 집에 가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쓴다는데 뭔 잔소리가 이렇게 많나. 내가 선하다고 지금 자네들 날 물로 보고 대드는 것인가? 어여들 썩 물러가게”
우리는 일찍 믿은 사람이나 나중에 믿은 사람이나 일단 믿기만 하면 다 천국 백성입니다. 즉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들이고 그 포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십자가의 보혈을 믿으신다면, 우리 모두는 포도원에서 일하는 품군들이라는 것입니다. 포도원은 선택받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회이고 구원받은 자들이 거하는 곳이며,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동행의 공간입니다. 교회일 수도, 삶의 여정일 수도, 천국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데나리온은 구원받은 자의 기쁨이고 선물입니다. 우리는 세상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미련해 보이고 무지해 보이며 연약하고 때때로 모자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세상적 기준으로 봐서는 아무런 혜택도 능력도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엄청난 부자가 몇이나 되며, 그 외 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몇이나 됩니까? 우리 고만고만한 사람들이며 잘난 것 보다 못난 것이 많고, 잘하는 것 보다 못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구별하여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서로 아웅다웅 싸우고 어쩔 때는 조그마한 이익에도 머리에 피 터지도록 싸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나 이외는, 내 가족이외는, 내 직장이외는, 내가 속한 곳 이외는 별로 관심이 없는 우리를 선택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힘든 것은 남도 힘들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사는 우리를 하나님은 은혜로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좋은 일 하는 것에는 손이 무거워 지는데, 죄 짖는 것에는 발이 빨라지는 우리를, 하나님은 다 아시면서도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마울 따름이며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이런 고백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다 주의 것이로다” 이런 고백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나의 모습을 깨달은 후에 그리고 철저한 회개에서 나온 고백이며 진심의 외침인 것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 있나이다”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예배들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그 분의 선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복이며 세상 그 무엇보다 값비싼 선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장터에서 일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일 잘하게 생긴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무엇 하나 눈에 차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우린 정말 아무 쓸데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선 주님의 기준으로 우릴 선택해 주셨고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주여 그저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릴 뿐입니다.”하는 고백이 우릴 입술에서 늘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주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하지만 이것 이전에 주님이 주신 것이 더 크기에 주님을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일 뿐입니다. 오직 우리는 주를 기뻐하며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며 주의 영광을 사모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거저 받은 이 은혜의 선물에 감사해야 하며, 인간적인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에 깊이 감사드려야 합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찬양하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축복하고 함께 주의 길을 걸어가도록 의지하며 다독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린 우리끼리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도 큰 은혜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그 받은 것에도 기쁜데, 남이 받은 것에 대해 시기하고 불평한다면 얼마나 못난 인생임을 드러내는 것입니까. 우리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기에 서로 돌아보며 일으켜 세워주고, 서로 높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은혜 입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이 말씀은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먼저되고 나중되는 사람들을 선택하신다는 것이며, 우리는 서로 시기하지 말고 받은 것에 족한 줄 알고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욕심내지 말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인생을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새벽 여섯시에 선택되어 일한 사람들, 모태신앙일 수 있고 오래전부터 집사로 섬기고 장로로 섬기고 권사로 섬긴 사람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사역자로 부름받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 선택받은 사람들, 세상 것 다 해보고 더러운 것 다 해봤다 늦으막에 선택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을 비판하고 예수님을 욕하고 교회를 저주했다가 병들거나 고난을 겪을 때 구원받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았고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각자마다 난 새벽사람, 오전 9시 정도, 아니면 오후 5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몇 시에 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것 불러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란 고백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입니다. “버러지만도 못한 인생인 날 불러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란 고백이 있느냐 없느냐란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고백을 날마다의 삶속에서 고백하시고 감사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한번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늦게 와서 한 데나리온 받은 그 사람들,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사람들이 우리 가족이라면 어떨까요? 실직 당한 내 아버지요, 등록금 마련하기 위해 일한 내 남동생이요, 학비 벌려는 내 오빠라면 어떻습니까? 그런데도 따지겠습니까? “왜 난 내 오빠보다 일 더 많이 했는데 하나님 왜 이렇게 불공평합니까?” 하고 따지겠습니까? “왜 우리 엄마는 나 보다 늦게 왔는데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고 엄마 기도만 들어주십니까?”하고 따지겠습니까? “맨날 야근만 하시고 용돈도 적게 주시면서 집에는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기도는 왜 응답이 잘되는 것입니까? 내 기도는 잘 들어주시지 않으면서요?”하시겠습니까? “학원비도 제때 주시지 않고 비싼 옷도 잘 사주시지 않는 우리 어머니 기도는 왜 잘 들어주시는 것입니까? 내가 매일 기도했는데도 들어주시지 않으면서요”하시겠습니까?
우린 무엇이 부족한 것입니까? 분명히 구원받은 우리는 한 형제요, 한 자매요, 한 가족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무엇이 부족해서 서로를 시기하고 다투고 분리하며 싸우는 것입니까? 왜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깍아내리고 없는 말도 지어 내고, 잘 되지 않는 사람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고 천국에서 영원토록 얼굴 맞대로 살거란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 서로에게 얼굴 붉히는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영원히 얼굴 붉히며 살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시고 “나 같은 것 때문에 예수님이 더러운 수렁에 오셔서 건져내 주셨구나.”하는 생각만 하시길 바랍니다. 남이 잘 되면 기뻐해 주시고 남이 잘 안되면 같이 아파하며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배아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형제고 한 자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족입니다. 가족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서로 앞 뒤 옆에 계신 분들과 이렇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아이고 안녕하세요. 천국에서 다시 봅시다”예 지금 웃으신것 처럼 천국에서도 서로 웃으시면서 만나시길 기도합니다. 지금같이 서로 바라보고 웃으면서 정말로 다시 만나길 기도드립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기에 그 은혜로 인해 우리는 한 가족이란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머리에 새기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